[기고] 폭풍의 화가 변시지 추모예술제를 기리며
[기고] 폭풍의 화가 변시지 추모예술제를 기리며
  • 서귀포방송
  • 승인 2023.06.07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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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 시인

우성 변시지 화백을 처음 뵙게 된 것은 스물네 살 때, 1989년도 12월 무렵, 희끗희끗 눈발 날리던 한겨울이었다. 서귀포 상설시장(현 매일올레시장), 어느 허름한 막소주집이었다. 변 화백이 제주대학교 강의를 일찍 끝내고 서귀포 동홍동 자택으로 귀가하는 길에, 한기팔 시인(이하 아윤선생)과 약속이 잡혀 저녁 무렵에 단골 막소주집으로 몰려가게 됐다. 필자는 그 당시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한국관광공사에 재직하면서 퇴근하고 6시 30분에는 매일 시 한 편씩을 써서 아윤선생께 보이곤 했는데, 그 짧은 시 수업이랄까 비평의 시간 틈새로 서귀포의 시인들이나 시 공부하는 분들이 수시로 모여들어서 한바탕 어울리곤 했다.

그 겨울날, 변시지 화백은 제자 양원석 화가(동양화 전공)를 불렀고 아윤선생은 시인 몇몇을 동행했으니, 화가와 시인들은 막소주와 더불어 열띤 토론들을 밤하늘의 불꽃처럼 화려하게 수놓았다. 양원석 화가는 나와 같은 말띠 동갑이라 허물없이 예술에 관해 수많은 의견들을 주고받곤 했었는데 이제는 시력이 아주 나빠져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끝내 술은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소주 한 잔 받아놓고 몇 시간씩 대가들 틈에서 자유롭게 의견들을 경청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축복받은 자산이 됐다.

작달막한 체구에 지팡이를 짚고 깔끔하고 조용하게 소주도 잘 드셨다. 검정 베레모 밑으로 조용하고 민첩하게 반짝이던 눈이 참 인상적이었다. 술자리를 파하며 변화백님 자택(당시 남양 맨션, 후에 세기 아파트로 옮겼음)으로 서넛이 그림구경을 가게 됐다. 현관에서부터 오일냄새가 폴폴거리더니만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마자 이런 황토밭인지 유채꽃밭인지 온통 거실이며 방벽에 대서사시같은 대작들로 꽉 차 있는 것이었다.

‘이런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계셨던 거인이셨구나!’

엄청난 반전이었다. 뭐라 뭐라 그림 설명을 해주셨지만 통 귀에는 안 들어오고 오직 그 황토빛 속으로 회오리바람 타고 빨려 들어가 화폭 속 소나무 뒤에 숨어서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 변화백의 제주그림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막소주집에서 그리고 각종 해물과 채소가 들어간 잡탕밥을 유독 좋아하셨던 덕성원에서 향원 복집에서 그런 자유로운 토론모임들이 대략 이십여 년 정도 이어졌다.

변씨와 현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서홍동 연주현씨 집안으로 1996년도에 출가하게 됐다. 바로 신혼집 서쪽 담(집 둘레 높은 담, 우성이란 호와 연관, 현재도 있음) 경계 너머가 변시지 화백 생가터라 그 인연이 더욱 소중하고 각별했다. 그리고 생가 초가집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몇 점 있었는데, 당시 이웃집인 초가집(현재 필자 거주하는 집 전신)을 넣은 것들이 있다고 아드님이신 변정훈 (공익법인)아트시지 이사장이 새롭게 알려주셨다.

‘시를 쓸 수밖에 없구나’ 그 말 한 마디에 운명처럼 매일 시를 써오듯이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서귀포 거리마다 공원마다 시가 울려 퍼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향의 세계라고 그림으로 표현했던 이중섭이나 특히 정지용 박목월 서정주 등이 일찍이 머물며 창작활동을 했던 서귀포에 예향의 향기가 널리 퍼지고 시를 전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간절히 꿈꾸던 일이었다.

그것은 바로 숨비소리 시낭송회가 탄생하게 된 계기였다. 이중섭 거리가 문화의 거리로 기틀이 다져질 무렵 한기팔 원로시인을 고문으로 두고 필자는 회장으로 그리고 그 당시에 시를 사랑하는 시민이었던 고현심(현 시인, 현 서귀포열린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 김미성(현 서귀포 문화원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평소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시낭송을 통해 시를 가까이하고 또 낭송도 해보며 시를 전파해보자 하는 취지로 숨비소리는 출발했다. 이중섭거리에서 2012년 5월에 발기됐고 제1회 숨비소리 시낭송회가 처음 열린 것은 2012년 6월 13일 이중섭거리 바로 예그리나 찻집이었다.

특히 원로 한기팔 시인은 늘 숨비소리 시낭송회 고문으로 ‘서귀포의 문학의 원류’를 강조해주시곤 하셨다. 또한 서귀포를 다녀간 서정주 박목월의 제자로서 은사이며 한국의 대표시인들의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말씀해주셨고 또 몇몇 작품들을 직접 육성으로 낭송해주셔서 깊은 감동을 주시곤 했다.

그리고 폭풍의 화가 변시지 화백도 초대문자를 보낼 때마다 매달 정기공연 때 오셔서 창가 의자에 앉아 조용하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띤 채로 시낭송을 감상하며 자리를 빛내주시곤 하셨다. 원로 두 분이 계셔주시니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했던지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이제는 먼 그리움으로 남은 특별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2012년 늦가을에 잠시 들려달라는 기별이 왔다. 화실이며 전시장이었던 ‘변시지 예술공간’을 곧장 방문해 변화백의 그림을 두 점 직접 구입하게 됐다. 그리고 케이 옥션에서 또 한 점 추가로 구입을 하게 됐고 현재 세 점 모두 소중하게 잘 보관하고 있으니 이만한 소중한 인연이 또 있을까. 그 후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제주대학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서둘러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투병으로 인해 숨비소리 시낭송회 공연에 참석을 못하신 것을 미안해하시며 잘 했느냐고 오히려 걱정을 해주셔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2013년 6월 8일 끝내 지병으로 타계하셨던 것이다.

그 후 2016년 7월 29일 ‘폭풍의 화가’ 고 변시지 화백이 고향에서 주민들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 서홍동 주민자치 위원회(위원장 양대년)는 변 화백의 생가 인근에 ‘변시지 그림 정원’을 조성하고 추모 조형물 ‘영원한 빛’을 세웠다. 그 날 열린 추모 조형물 제막식에서 필자는 변화백과의 특별한 인연을 밝히며, 특별 창작시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낭송해 그 소중한 인연을 다시금 깊이 기렸다. 그 후 김백기 예술 감독의 변시지 퍼포먼스와 바람난장 예술공연이 ‘변시지 추모 공원’에서 있을 때 내레이션 시낭송으로 수차례 애송되고 있어, 늘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 말년에 한 손엔 지팡이를 또 한 손은 필자의 손을 꼭 잡고 세기아파트 계단을 올라, 잘 가라 오래도록 손 흔드시던 그 모습들은 따뜻한 온기로 오롯 남아, 밤을 새워 창작시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2021년 가을에 서귀포방송의 장수익기자가 ‘좀 있다 뵙겠습니다’ 라는 전화와 함께 서울의 김종록 소설가를 데리고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기들 끝에 시나 소설을 써서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좀 더 알리고 차후에 생가터 복원과 미술관 건립이 됐으면 좋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서귀포방송에 ‘변시지 화백의 그림과 시’ 타이틀로 시를 매주 한 편씩 연재하기로 결정했고 서울에 변정훈 이사장하고도 소통해 2023년 서거 10주년에 시집을 묶어내고 2026년 탄생 1백주년에도 또 시집을 묶어내기로 약속했다.

폭풍의 화가 변시지 노래

2022년 6월에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 시에다 서울 정덕기 유명 작곡가가 곡을 붙여 창작곡이 만들어졌다. 9월 26일에는 박기천 성악가에 의해 서울 양재동 윤봉길 기념관에서 초연이 되어 다시 한 번 변화백을 기렸다.

강상수 도의원과 강성극 마을회장 및 주민자치위원장들과 여러 번 소통했으며. 수많은 서홍동 주민들과 시민들 그리고 도내외 문화예술인들 및 관계자들의 관심과 도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6월 10일에 변시지 그림정원에서 변시지 추모예술제가 열린다. 더 나아가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신념으로 서홍동 생가터 복원과 변시지미술관 건립이 꼭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오며 가며 바로 집 앞이라 ‘변시지 그림정원’에 들러 햇볕도 쬐고 숨 고르기도 한다. 구부정하게 등을 구부리고 작은 캔버스에 그림 작업하시는 변화백의 동상 옆에 앉아 있노라면 까마귀들이 몇 마리 쉬다가 간다. 까마귀는 제주에서 길조다, 그 중 한 마리는 한 개의 다리를 가졌다, 절룩이는 까마귀, 그것은 화가이며 곧 시인이다. 그림도 불멸의 명작으로 남고 그 곁에 시도 길이 남기를..

 이제 절룩이며 시인은 또다시 부단히 가야 하는 것이다.

‘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에 뜻을 새기다’란 제목의 일곱 번째 시집을 삼가 추모의 마음으로 상재했다.

ㅣ시인의 말ㅣ

이어도로 가신지 어연 십 년 ...

쉴 새 없이 큰 물결 작은 물결들은

흰 그리움으로 출렁입니다.

세상의 모든 폭풍들이 뚫고 지나갈

바람의 통로를 화폭에 그려내듯이

경건한 추모의 마음으로

한 편 두 편 써두었던 시를

묶습니다.

2023년 6월 8일 기일에

문 상 금

폭풍의 화가 변시지

파란 바닷물이 출렁일 때면

이어도는 어떤 곳일지

늘 궁금하였다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이 폭풍이 되고

그 세찬 폭풍 속을

지팡이를 짚고

쓰러질듯 절룩이며

이어도를 건너오는 사내가 있다

죽어서 갈 수 있다는 이어도를

온통 황토빛인 하늘과 바다를

등 뒤에 거느리고

이어도를 건너오는

구부정한 한 사내가 있다

아아, 폭풍의 화가 변시지

강렬한 폭풍 속에 내던져진

존재의 고독을 한없이 사랑한 사내

세상의 모든 바람들이 뚫고 지나갈

바람의 통로를 화폭에 그려낸다

세찬 폭풍, 쓰러질 것 같은 소나무, 외로운 사내

흔들리는 쪽배, 여윈 말, 황토빛 하늘과 바다

양파뿌리 같은 태양

그리고 다리가 하나인 까마귀

또 절룩이는 까마귀,

까마귀 ...

사내는 까마귀에게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까옥, 까옥”

까마귀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눈을 감으면

기다림과 적막 그리고 평화

온통 그리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

이어도에서

손 흔드는

아아, 폭풍의 화가 변시지

오늘은 서귀포 서홍동 변시지 그림정원에서

불멸의 점 하나 내리찍는다

- ‘폭풍의 화가 변시지’ 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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