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변시지 개인전, 끝나지 않은 그리움
[전시회] 변시지 개인전, 끝나지 않은 그리움
  • 장수익 기자
  • 승인 2023.08.04 18: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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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제주 스페이스
7월 15일 ~ 9월 30일
롯데호텔제주 8층 (서귀포시 중문관광로72번길 35)

“황갈색이 여백으로 이해될 때 무한한 공간에 무한한 이야기와 꿈을 상상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제주의 역사일 수도 있고, 척박한 땅과 대풍, 거친 파도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역사 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사람이 존재하고 한이 있고 인간의 의지가 있다.  그 이야기를 담기 위해 화려한 색을 버리고 황갈색을 고집했다. 의식은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는 단순함에 있다”(변시지) 

아트제주 스페이스는 2023년 7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고 변시지 화백(1926-2013)의 작품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0년 이후 제주에서 3년만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이다. 

변시지는 거친 황토빛 바탕에 검은 선으로 구부정한 사내, 말, 까마귀, 초가집, 노송, 바다 등을 소재로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표현하는 고유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한없는 외로움의 정서가 깊이 배어있는데, 폴 고갱(1848-1903)의 오래된 물음 ‘우리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그는 삶의 격랑 속 인간의 모습으로 답했다. 작품 속 제주의 바람과 파도치는 바다, 삶과 죽음과의 대결은 인간과 자연과의 끝없는 싸움을 그린 헤밍웨이(1899-1961)의 소설 ‘노인과 바다'와도 결을 같이한다. 정체성과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그는 모든 색을 버리고 황색조의 단색과 굵고 검은 선으로 회귀했다. 

이번 전시는 서거 10주년을 맞아 그의 제주시대(1975~2013) 대표 작품을 1, 2부로 나누어 심도있게 조명한다. 이 시기의 작업은 작가가 자신의 색깔을 찾아 평생을 바쳤던 순례의 길이 제주에서 완전히 새로워진 화법으로 완성됐다는 점에서 매우 주요하다. 특히 1981년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서양의 모방이 아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는 발견으로 자신에 찬 작업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제주의 본질을 바람에서 찾았고 폭풍우치는 바다에서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표현했다. 변시지는 제주시대를 통해 자연에 순응하는 동양미를 승계하고 제주의 자연미를 함축시켜 인간 본연의 풍토로 환원함으로써 보편성을 획득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완성시켰다.  

아트제주 스페이스는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들의 다각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변시지의 생전 작품 5천여 점을 기록한 전작 도록(7권)을 함께 전시한다. 또한 변시지 백서를 포함한 다양한 서적이 전시되며 온라인에서도 뷰잉룸을 통해 대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변시지 화백은 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박물관 한국관 개관 초대전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예술의 전당, 제주도립미술관, 기당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문화예술발전 유공자 보관문화훈장, 제주도문화상 국민훈장, 일본 <광풍회전> 최고상, 일본 문부성 주최 <일전> 조선인 최초 입선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 소개>

우성 변시지 화백(1926-2013)는 1931년 6세에 가족과 일본으로 이주했다. 오사카 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도쿄로 이주해 당시 서양화의 대가 데라우치 만지로의 문하생이 되었다. 23세의 나이로 일본 최고 화단인 '광풍회전'에서 역대 최연소 최고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심사위원까지 역임하면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일본 화단으로부터 크나큰 주목을 받았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다. 당시 화단으로부터 그의 그림은 본질적으로 일본인과 다르다는 평가를 받은 후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1957년 31세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초청됐던 그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고궁을 연구하는 비원파를 창시, 서양철학을 버리고 새로운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한국의 화풍을 개척했다. 

1975년 50세가 되던 해 서울에 있는 가족을 뒤로하고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직을 맡아 제주로 귀향했다. 44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제주의 원시 자연과 섬 사람들의 문화에 깊이 매료됐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제주의 본질을 바람에서 찾았던 그는 황갈색 단색조에 검은 선으로 그린 폭풍우 치는 바다와 이를 마주한 사내의 모습을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07년 81세에 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아시아계 생존 작가 최초로 초청되어 100호 대작 2점을 10년간 상설 전시했다. 대자연에서 얻은 심상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예술로 순환시켜 가는 과정이 곧 그의 삶이라고 썼던 그는 ‘폭풍의 화가'로 불리며 그의 화업을 완성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변 선생의 그림을 풍경화라고 말하고 있지만, 풍경화이기에는 너무나 현대인이 잃어버린 고향의 심상을 여실히 표현하고 있기에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실존을 애잔하고 비극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무엇이 작가로 하여금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거침없는 표현의 경지에 달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욕심없이 대자연과 작가 자신이 만날 수 있는 경지에서 우주적 질서에 그 자신의 운필을 내어 맡길 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토록 그가 그린 비원파류의 풍경화가 화려하고 이상화된 감각이 풍만했고 그 많은 현대미술의 시대적 조류가 강타했어도 그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포스트모던적 지역주의의 승리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한다” (이건용)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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