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시인 시시콜콜 제주살이(18)
농부시인 시시콜콜 제주살이(18)
  • 서귀포방송
  • 승인 2019.02.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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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정희성 농부시인

성균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중화인민공화국 난징 아가씨가 논문집을 들고 제주에 왔다. 인연이 닿아 논문을 감수해 주었는데, 본국에서 학위취득 축하차 건너온 어머니와 제주여행을 하면서 일출봉에 들른다고 해 인근 커피숍을 약속장소로 정했다.

표선에서 일주도로로 내달리는 201번 버스(서귀포- 제주시 노선)를 타고 성산포로 향한다. 같은 성산읍권이라도 내가 사는 신풍리는 성산포와는 각각 서쪽 동쪽 끝이라 사십 리나 떨어져 있다. 그런 만큼 자주 오지는 못하고 고작 한철에 한두 번 바람쐬러 온다.

오랜만에 길 나선 김에 짤막올레를 걷기로 하고, 광치기해변에서 내려 한 정거장 거리 시오리 모래길을 걷는다. 빌레에 모여 있던 갈매기들이 인기척을 느끼자 슬금슬금 물러난다.

광치기와 일출봉 중간쯤이 '터진목'이다. 여러 4.3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길 건너편 유채꽃밭에서는 젊은 패들이 사진을 찍느라 왁자지껄한데, 이곳 '제주4.3성산읍희생자위령비' 쪽은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잠시 묵념을 하고 가던 길 다시 걷는다.

굳이 다크투어를 강권하는 것은 아니나, 성산포나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보는 세계자연유산 성산일출봉의 위용에 박수치기에 앞서 터진목으로 끌려와 흉탄에 스러진 억울한 목숨들을 위해 잠시나마 추념의 시간을 가질 일이다.

이 수상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와 살아 있는 자의 몫은 무엇일까, 곱씹어본다. 돌아보니 갈매기들이 다시 그 자리, 빌레 위로 날아들고 있다.

돌아오는 길은 온평, 난산, 신산을 에둘러 운행하는 295번 읍면순환 버스를 탔다. 이 버스가 가면서 이른바 제2공항 예정지 마을들을 거친다. 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깃발들이 삼별초 장졸들처럼 꼿꼿하게 서있다. 생존, 생활의 존엄과 근본없는 토건정책의 무지막지한 일방통행이 격돌하는 현장이 또한 성산읍이기도 하다.

마침 오후에 예정된 국토교통부 제2공항 도민설명회(성산일출봉농협)가 결국 파행으로 치달았다는 소식이다. 도민 70퍼센트가 반대하는데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찬성 주민 30퍼센트의 알권리를 위해 설명회가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구름낀 날씨가 요즘 제주의 형편같다. 어제는 제주시 시가지 지역이 미세먼지에 시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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