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인간은 만물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10)인간은 만물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서귀포방송
  • 승인 2022.08.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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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 오안일 선생의 ‘옛 제주인의 샘’ 이야기]

10. 인간은 만물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 ‘옛 제주인의 샘’ 제1집 제3장 「가치」에 수록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란 말이 있다. 인간은 인간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위한다는 것은 서로가 각별하게 보살피고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정성을 쏟는 마음가짐이나 행위를 말한다. 더 나아가 만물을 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금상첨화이다.

그러나 실상은 얼마나 많은 살상과 파괴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인간의 욕망이나 이익을 얻는 수단으로 발생하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 유린, 인신매매, 각종 성범죄들이 쏟아져 인간이 인간을 파괴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각 지구촌 현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은 산산조각 부서지고 짓밟혀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쓸쓸히 사라져가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고 유린하여서는 안 된다. 또한 자연을 파괴하고 멸종시켜서도 안 된다. 얼마나 많은 생태계가 무너지고 동식물들이 멸종위기를 겪고 있는가.

보목동 가시선인장

                        문 상 금

나는

보목동 가시선인장

칭칭 그리움으로 뿌리 내린다

북태평양 떠돌던 씨앗 한 톨

보목 바닷가

남루한 흙 한 평

쉴 새 없이 파도가 맨몸을 밀어낼지라도

자갈돌 짠 틈새에 하얀 뿌리,

악착같이 문어발 내린다

때로 자갈돌 사이

소금기 같은 처절함으로 피어난 꽃들은

오래도록 뜨거운 사랑을 하여

손바닥 같은 분신들을 셀 수 없이 터뜨린다

아아, 세찬 폭풍의 그 질주하는 분신들은

섶섭 앞바다를 날아올라

또 어느 바닷가 땅 한 평에 도착할까

아주 오래된 영혼의

손바닥 물집마다

톡톡 노란 꽃 피어낼까

눈부시도록

쓸쓸히 불타는

나는

보목동 가시선인장

-제4시집 「꽃에 미친 여자」에 수록되었다

하늘과 땅이 한 몸이 되어 비바람치고 나무들이 흔들리고 바다가 뒤집혀 허연 속살을 들어낼 때면 가만히 앉아 글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잠을 잘 수도 없다. 내 영혼은 나뭇잎처럼 마구 하늘과 땅을 날아다녀, 이리저리 쏘다녀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그런 비바람이나 태풍이나 폭풍이 불어올 때는 가끔 제지기 오름 앞바다에 오래도록 서 있곤 하였다. 섶섬 앞과 동쪽으로 집채 만 한 너울이 허옇게 바다를 뒤집으며 다가오곤 하였다. 방파제 옆 빨간 돈키호테 등대를 금방 뒤덮고 하얀 거인 같은 그것들은 해안가 자갈돌에 부딪혀 하나씩 소멸해갔다. 또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것들은 우우거리며 내 영혼에 부딪혔다가 다시 시커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폭우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형체도 없이 그 진한 향기 같은 울림만 남아 온통 뒤범벅인 영혼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왔다.

그 해안가 부서지는 포말을 따라가다가 자갈돌 너머 조그만 모래밭에 뿌리내린 손바닥 가시선인장 군락을 만났다. 아주 오래된 영혼의 손바닥 물집마다 피어난 노란 선인장 꽃, 한림 월령 선인장 군락지나 사계바다에서 만났던 그것들과는 또 다른 뭉클한 느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멕시코가 원산지인 선인장이 쿠로시오 난류를 타고 여기 보목 해안까지 밀려와 수백 년 동안 둥지를 틀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이렇게 외로움을 견디고 악착같이도 잘 살아있었구나, 울퉁불퉁한 물집과 상처들을 하나씩 어루만져 주었다. 손바닥엔 솜털 같은 가시들이 잔뜩 박혀 따끔거렸다. 금방 붓기 시작하더니, 물집이 잡힌 것처럼 빨개지는 것이었다.

보목 선인장 군락지는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250년 전후로 추정되며, 제지기 오름 남쪽, 이주일 별장 앞, 현규화 할머니(2012년 당시 80세)소유의 납작집 마당, 바닷가 돌담을 둘러싸고 자생하고 있었다, 딸은 한연정으로 우연히 만나보니, 서귀포여자중학교 동창이었으며 ‘볼레낭개 할망집’이라는 가게를 하고 있었다, 고사리를 잔뜩 넣어 푹 끓인 고메기 찌개와 톡 쏘는 홍어회와 홍어전, 홍어튀김이 일품이었다. 보목에서 자리물회가 아닌 다른 요리는 그 날 처음으로 먹어 보았다, 수령은 오래 되었지만 월령 선인장 군락지보다 규모가 작아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워서 밤을 새워 ‘보목동 가시선인장’이란 시를 써 ‘서귀포문학’에 발표했다.

서귀포시 문화재 담당자와 통화하고 서귀포신문에도 보도를 부탁했다, 그리고 서귀포신문 ‘문필봉’ 필진이었기에 직접 이 선인장을 소재로 한 수필을 써 발표하기도 했다. 모두들 충분히 보호해야 할 가치는 있다고 공감하면서도 군락지 면적이 비교적 좁다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나무는 한 그루도 보호수로 지정되고 등록되는데, 선인장은 왜 그럴 수 없는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2015년 주민설명회를 거쳐, 2017년부터 침수피해 등 재해와 안전을 이유로 보목 바닷가를 따라 390m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어 2018년도 4월에 완료되었다, 하필이면 그 구간에 선인장 군락지가 있는 것이었다, 굉음을 내는 포클레인 칼날에 새파랗게 질린 선인장의 육신들은 갈가리 찢기고 뭉개지고, 자갈돌 위에 진득진득한 선혈이 낭자했다, 아아,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잘리고 찢겨 버려질 운명으로 그 먼 해류와 물결을 타고 여기까지 와서, 흰 뿌리를 내렸던가.

기특하다고 더 번성하라고, 시도 써주었는데, 그림도 그려주었는데, 너무 가슴이 메여, 지금도 참 부끄러운 일 중에 하나로 가슴에 묻었다.

그 날에, 그 찢긴 손바닥 선인장 서너 개를 들고 와서 우리 집 앞마당 서쪽 돌담 밑에 심어주며 속삭였다, ‘내 딸들아, 이제는 내가 지켜줄게, 이 곳은 다시 너희들 안식처가 되고 고향이 될 터이니, 또 악착 같이 뿌리 내려라, 매일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해서 분신들을 수없이 태어나게 하라’

백두 선생은 말씀하셨다. “인간은 만물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자연과 인간을 보살피고 만물이 번영 발전하는 일에 공헌을 해야 합니다.”

“인간의 가치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고 이웃과 세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이웃과 남에게 베푼 미덕의 생활로 서로 함께 행복을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것에 임하는 것이 인간의 가치가 아닌가 합니다” 라고 강조하셨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다는 것, 서로 함께 행복을 꿈꾸는 참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글 문상금 시인]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약력 *

○ 1992년 심상지 <세수를 하며>외 4편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심상시인회, 제주펜클럽, 제주문인협회, 서귀포문인협회 , 한국가곡작사가협회 , 숨비소리 시낭송회 회원

○ 서귀포문학상 수상

○ 시집 ‘겨울나무’ ‘다들 집으로 간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있기 때문이다’ ‘꽃에 미친 여자’ ‘첫사랑’ 펴냄

○ (현)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 회장 

○ (전) 서귀포문인협회 회장, 숨비소리 시낭송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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