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늠하며 살라.
- ‘옛 제주인의 샘’ 제1집 제1장에 수록
한 권의 책을 받았다, 이미 오래전 발간된 책이니, 그 세월의 무게만큼 마음의 무게마저 얹어져서, 몇 달 며칠을 쉽게 펼쳐볼 수가 없었다. ‘옛 제주인의 샘’ 한 권의 책은 그대로 있었다.
문득, 두꺼운 양장 책표지를 들춰보았다. 제주 선조들이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삶의 지표로 삼았던 정직한 삶, 인내의 삶, 지혜로운 삶이 된 신앙의 구심점과 원칙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옛 글귀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제1장에는 가늠(짐작)에 대하여 씌어져 있었다. 다소 생소한 글귀들도 많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끌림 같은 것일까, 한 글자씩 읽어보고 또 한 글자씩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봐, 해봤어?’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주저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셨던 말씀이다. 이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봐, 해봤어?’
가늠은 어떤 일이 되어 가는 형편이나 상황을 헤아려서 짐작하는 것을 말한다. 매사에 정확히 인지하고 가늠할 줄 알아야 낭패할 일이 덜 생긴다. 그 가늠할 목표나 기준에 맞고 안 맞고를 헤아릴 줄 안다면 절반 이상은 성공이다.
예로 물가늠, 발가늠, 마음가늠 등을 살펴보자.
물가늠은 필요한 만큼의 물의 분량을 어림잡아 헤아리는 것이다. 글 쓰고 직장생활만 했기 때문에 갓 결혼했을 때, 밥물을 맞추기가 굉장히 어려웠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저절로 가늠이 되었다. 흰 쌀을 씻고 대충 손으로 맞추어도 맛있는 밥이 되었다. 나중에는 아예 눈으로만 물을 맞추어도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이 되었다. 하얀 쌀밥에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처럼 김이 모락모락 솟았다. 나는 눈을 꼭 감고 밥 냄새를 맡곤 했다. 오래 맡아도 질리지 않는 아늑함의 흰 꽃잎 같은 그것을 곤밥이라 불렀다.
발가늠은 발걸음의 수로 대략 길이를 재거나 또는 그러한 일을 뜻한다. 성큼성큼 발가늠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그 중에 마음가늠은 제일 어려운 일이다. 입을 통해 발음되는 언어를 통하여 의사전달이나 교환을 하게 되는데, 이해가 잘 되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오해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언어로 전달하지 못한 속말, 속마음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곧 마음가늠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결국 가늠을 잘 하려면 눈•코•귀를 항상 정갈하게 하여야 한다. 눈으로 헤아리고 코로 감각을 인지하고 귀를 활짝 열어 상대방이나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줄 알아야 한다. 곧 가늠한다는 것은 오감을, 즉 시•청•후•미•촉의 5개의 감각 기능을 깨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깨운 다음에는 부단히 갈고 닦아 외부 사물들의 상태나 변화를 민첩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육감을 하나 덧붙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육감이란 분석적인 사고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정신세계의 작용이다, 즉 직관력이나 직감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진리의 깨달음이나 발명이나 발견 그리고 창작 등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많은 직간접의 경험이나 지혜가 쌓일수록 직관력과 직감은 큰 힘을 발휘한다.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창조인 것이다. 여러 가지 분야 특히 예술이나 사업적인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가늠하며 살라’는 것은 직간접의 경험과 지혜가 차곡차곡 쌓아둔 곡식 볏가리처럼 축적이 된 힘을 활용해 잘 살아가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가늠하는 능력과 오감의 예리함 그리고 육감을 불러일으키는 능력까지 축적이 된다면, 실로 엄청난 힘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글 문상금 시인]
* 옛말 : 열질 바당속은 알아도 ᄒᆞᆫ질 사람속은 모른다.
(열길 바닷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

* 문상금 약력 *
○ 1992년 심상지 <세수를 하며>외 4편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심상시인회, 제주펜클럽, 제주문인협회, 서귀포문인협회 , 한국가곡작사가협회 , 숨비소리 시낭송회 회원
○ 서귀포문학상 수상
○ 시집 ‘겨울나무’ ‘다들 집으로 간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있기 때문이다’ ‘꽃에 미친 여자’ ‘첫사랑’ 펴냄
○ (현)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 회장
○ (전) 서귀포문인협회 회장, 숨비소리 시낭송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