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문화원 '그리운 제주풍경 100' 출간
서귀포문화원 '그리운 제주풍경 100'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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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31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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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순이 시인, 그림 김동연 화가

1950년대와 1960년대 제주도 풍속을 소재로 한 풍속자료집 '그리운 제주풍경 100'이 발간됐다.

이 책은 급속하게 사라져 가는 제주의 풍속과 원풍경 100장면을 선정해 4계절에 어울리게 제주의 동화적 분위기로 그려냈으며, 서귀포문화원(원장 강명언)이 2018 서귀포시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펴냈다.

제주의 시인 김순이 선생이 짓고 김동연 화백이 삽화를 그린 '그리운 제주 풍경 100'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옛날을 생각해 보게 하고 또한 나의 과거와 추억도 함께 소환해 주는 매우 정겹고 반가운 이야기그림책이다.

그리운 옛 제주의 모습을 100 편의 따듯하고 정겨운 이야기로 다시 살려 낸 이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4개의 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야기는 한라산 남쪽 마을에 사는 정순이네 집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때는 1950년대 말 혹은 60년대 초, 서귀포 어느 바닷가 동네에 사는 정순이는 열한 살이다. 정순이네는 아버지, 엄마, 아홉 살짜리 남동생 승철이와 세 살짜리 여동생 어진이가 안채에 살고 있고 할머니는 바깥채에서 혼자 따로 살고 계신다. 제주는 육지와 달리 이렇게 장가간 아들이 제사를 물려받아도 될 정도로 안정되었다 싶으면, 제주말로 안거리라고 하는 안채를 아들 내외에게 내어 주고 부모는 바깥채인 밖거리로 나가서 산다고 한다. 물론 안거리와 밖거리는 마당을 같이 쓰는 한집이나 마찬가지지만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부엌을 따로 쓰며 각자 자기 살림을 한다는 것은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매우 슬기로운 생활 방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의 봄은 오름에서 말을 부르는 테우리의 구성진 목소리와 영등할망을 떠나보내는 영등굿으로 시작된다. 어른들은 봄을 맞아 초가지붕을 일어 집을 단장하고 밭을 갈아 농사를 시작할 준비를 하며 아이들은 봄 소풍을 간다.

여름이 되면 보리가 익기를 기다리며 섯보리밥을 해 먹고, 익은 보리를 수확해서 맷돌질을 한다. 콩과 조가 자라고 있는 밭을 매고 해녀들은 물맞이를 가며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곤충채집을 한다.

가을에는 오름에 올라 땔감을 준비하고 동네사람들과 모여 한바탕 추석멩질을 지내며 한라산에 올려놓았던 쉐()를 찾아서 데리고 내려와야 한다.

겨울이 오면 집집마다 장을 담그고 돗추렴 쉐추렴을 하여 설멩질 지낼 준비를 하고 마을에서는 본향당굿과 포제를 지내며 새해를 맞는다.

'그리운 제주 풍경 100'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토속적인 제주의 향기를 쉽고도 정감 있는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정순이와 승철이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와 동네 이야기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함께 읽어도 각자 자신의 정서에 맞는 느낌을 불러 올 수 있다. 제주에 대해 이토록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쓴 책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불 주사 맞기가 무서워서 아픈 척하려는 기태 이야기나 지넹이 잡아다 주고 받은 돈으로 만화책을 보려는 승철이와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그리고 '그리운 제주 풍경 100'에는 육지 생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주 특유의 문화와 정서가 있다. 논 농사 짓는 곳에서는 바쁜 봄철의 모내기 방학이 있지만 제주에는 미역 따는 일손을 돕기 위한 미역 방학이 있다. 또 해녀 입문식이나 육지로 물질 가는 이야기, 해녀들의 짧은 휴가인 물맞이와 모살뜸, 테우를 타고 나가서 자리를 거리는 이야기, 오름에 가서 겨울 땔감, 즉 지들커를 장만해 오는 이야기 등을 읽다 보면 , 정말 제주에는 다른 지방과는 확실히 다른 풍속이 있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 책에는 5~60년 전 아이들의 놀이와 생활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남자 아이들은 자치기와 구슬치기를 하고,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놀이와 줄넘기를 한다. 함께 모여서 숨바꼭질인 곱을락도 하고 생선 구운 도시락을 들고 소풍도 간다. 동네 잔치인 가을 운동회 모습도 보이고 겨울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연을 하늘 높이 날리며 논다. 밤새 이불에 지도를 그려서 푸는체()를 쓰고 울먹이며 소금을 얻으러 온 꼬맹이의 모습에서는 우리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한 번씩 떠올려 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책을 마무리하는 김순이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말은 우리들에게 지나간 제주를 들여다보며, 동시에 마찬가지로 곧 그리워질 지금의 우리를 잘 살펴보고 즐겁게 살아 보라고 등을 토닥이는 것 같다.

·여름·가을·겨울 제주의 소리치는 바다에서, 어질고 둥근 오름에서, 웃드르 억새들녘에서 바람은 불었고 아이들은 자랐고 사람들은 부지런했다. 하루도 제대로 쉬어 보지 못하는 삶이었다. 동이 트면 밭으로 가고, 물때가 되면 바다로 달렸으나 삶은 팍팍했다. 늘 배가 고팠다.

이것저것 부족한 것 투성이였다. 그런 세상에서 아이들은 희망이었고 온기(溫氣)였다. 그 지긋지긋했던 가난 속에서 각인됐던 풍경은 추억 속 그리움이 되었다. 그리움은 언제부턴가 누추했던 그 시절을 따스하게 비추는 등댓불이 되어 명멸하기 시작했고 깊이 각인된 그때 그 사람 그 풍경은 생생한 모습으로 다가와 지금 우리 곁에서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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