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제주떼배 소고
[기고] 제주떼배 소고
  • 서귀포방송
  • 승인 2021.11.1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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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바다, 한국하멜기념사업회 회장

제주 떼배는 원시 형태의 통나무 배로 전래되고 있다. 이 떼배는 제주에서 터배, 터위, 테우등, 그 명칭은 마을마다 제각기 불리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 어원의 뿌리를 찾아서 떼배로 기술하기로 한다. 이 떼배는 오래전부터 제주의 연근해에서 고기잡이, 해조류 채취, 물자이동등에 이용되고 있었다. 이러한 원시 형태로 남아있는 떼배는 지구촌 여러 나라에 있는 원시형태의 통나무 배들과 배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롤모델이 되고 있다.

인류 문화와 문명은 이러한 원시 형태의 통나무 떼배를 이용해 문화이동 수단으로 수백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먼곳까지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 출토된 가장 오래된 배 유물로 경남 창녕군 부수면 비봉리 신석기시대의 유적에서 8천년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만든 통나무배가 발굴되어서 화제를 모았다. 이 통나무배는 불과 석기로 깍고 만든 배로 알려지고 있다. 통나무를 연장이나 돌을 불로 구어서 파내는 작업을 통해 만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통나무 떼배는 오늘날 선박의 시원이 되고 있다. 기원전 4천년경에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토기에 그려진 그림에서 뗏목배를 만나게 된다.

2,500년 전에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가죽배(에 대한 글을 남기고있다. 또 한 인류 초기 원시배들은 토기나 암벽, 접시, 점토에 조각하고 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파피루스, (갈대)로만든 배들은 기원전 4000년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는 제주 떼배와 비교하는데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인류는 통나무를 여러 개 모아서 뗏목 형태로 만들었다,

제주도와 한반도는 지리적으로 시인거리에 있어서 해류와 조류 그리고 바람을 이용하는 항해가 이뤄졌다.

필자는 1996년, 1997년,4월 제주에서 규슈 나가사키 두 차례, 2001년 4월 전남 영암, 일본 사가현 가라스 항, 모두 세 차례 탐험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한 제주도 연안 일주 탐험항해, 2006년 6월,제주 화북-전남 완도,강진 마량항으로 이어지는 벽랑국 탐험 항해를 했다. 전라도 남부 해안과 제주도는 시인거리에 있어서 목적 항해와 표류항해를 통해 문화 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제주와 일본은 한반도를 통하여 문화이동들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제주 떼배는 고대 선박의 시원과 역사를 살피는데 중요한 해양 유산이다.

세계 도처에 잔존해 있는 원시배들은 인류의 해양문화 이동과 발달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어서 제주 떼배에 대한 역사, 문화적 관심과 연구들을 기대해 본다.

인류의 원시배들은 나라마다 지리적인 기후, 풍토, 자연환경에 따라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제작되고 있다. 에스키모 사람들은 수렵으로 획득한 동물가죽으로 카약형태로 이동수단에 이용하고 있다. 이집트 문명의 발상지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는 나무가지를 엮어 만든 바구니 모양에 수피를 씌운 가죽배가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나뭇가지 위에 동물가죽이나 나무껍질을 씌워 만든 카누로, 남미 티티카오에는 가벼운 나무를 엮어서 만든 발사선이 있다. 아프리카 지방에서는 갈대를 묶어서 만든 파피루스선은 그들의 최초 원시배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대나무 배인 죽벌선은 그들의 최초의 원시배이며, 남양군도,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통나무를 깎아 파서 만든 원시배들이다.

이처럼 세계 도처에는 인류문명의 시작과 함께 다양한 원시배들이 있다.

사람들은 육지에서 대양으로 강에서 바다로 이동하면서 유일하게 원시 형태의 배를 이동수단으로서 활용했다. 인류 최초의 주운형태는 지금까지 알려진 여러 원시 통나무 배들에 대해 살펴 보았다.

한국의 고대 국가와 도시들은 대동강, 한강, 금강,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등 강 유역을 중심으로 수렵생활과 고기잡이와 채집경제단계를 거쳐 농경문화로 발전했다.

이들의 삶은 육지에서 이뤄졌지만 강과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집단 주거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인류사의 공통된 현장들이다.

중국은 은나라 때 갑골문, 주나라 때 금석문, 진시황 때 통일된 소전을 거쳐 오늘날 한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배 주자는 내 천, 고을 주, 나라 주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천자는 강물의 흐름을 보아서 만들었으며, 주자는 천에 가로로 일자를 올려놓은 것인데, 이는 삿대를 상징한 것으로 김성호 박사는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주(州, 周, 舟)의 발음이 모두 ‘주’인 것은 이들이 모두 천에서 비롯된 형제관계임을 알수 있다, 중국의 배는 내륙 하천에서 기원되고있다.

배 주자의 변천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떼배는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강 유역에서 물자이동과 문화이동으로 강을 오르내리기 위하여 사용됐던 나룻배 형태에서 기원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지리적 독립성 때문에 오늘날까지 원형에 가깝도록 풍토에 맞게 만들어져 전래되고 있는것이다.

중국 최초의 한자 사전인 설문해자(AD100)에 보면 “주는 곧 오늘의 배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자가 한 단계 발전된 선자는 주변에 여덟 팔자와 구자가 조합된 글자이다.

중국의 벌선과 제주의 떼배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김성호 박사는 구자는 승무원의 양쪽 팔에 각각 삿대를 팔자로 잡은 형상으로 보고 있다. 결국 중국에서도 이처럼 뗏목(죽벌선)이 오늘날 선박으로 발달됐음을 문자로써 확인하게 된다.

오늘날 배를 통상 선박으로 부르게 된 것도 다음 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북송 때 정도(990~153년) 집운에 “박은 배에 흰 돛을 단 배”라고 했다. 다시 정리하면 선박이란 배가 삿대를 젓고 재래선이든 동력선이든 선박이라는 이름이 쓰여지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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