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나의 작은 친절
[기고] 하나의 작은 친절
  • 서귀포방송
  • 승인 2023.11.05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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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서귀포시 도서관운영사무소 주무관
김진희
김진희

여름의 끝자락에 있었던 일이다.

보행자 신호등이 청색에서 적색으로 바뀌었지만, 아직 횡단보도의 중간밖에 다다르지 못한 어르신 한 분이 느린 걸음으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계셨다. 멀리서 달려오던 차들은 빠르게 횡단보도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속도를 충분히 줄이지 못한 차량 한 대는 정차하지 못하고 어르신을 간신히 피해 횡단보도를 통과했다. 그때였다. 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정지선 앞에서 정차하더니 운전자가 문을 열고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그 운전자는 수신호로 달려오는 차들을 멈추게 하고 어르신을 부축하여 횡단보도 끝까지 모셔다드렸다. 그러고는 다시 뛰어와 기다려줘 고맙다는 제스쳐를 한 후 본인의 차에 올라타서 유유히 갈 길을 갔다. 누가 보면 마치 횡단보도에서 곤란을 겪고 계신 어르신의 손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그 운전자의 기민한 개입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면 나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날 길 위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을 목격한 것 같아서 그 상황과 운전자의 행동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마르타 바르톨의 글 없는 그림책 '하나의 작은 친절'에서는 반려견을 잃어버린 슬픔 중에도 일상 중에 만난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가 작은 친절을 베푸는 모습을 본 다른 시민들은 자신의 일상 중에 자신도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 그러한 친절들이 징검다리가 되어 누군가의 친절에 의해 주인공은 잃어버린 반려견을 찾게 된다. 작가는 친절을 목격한 이가 다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된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친절함을 건네받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건네지는 친절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나 또한 누군가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오늘 건네는 작은 친절은 상대방 뿐 아니라 그 사람의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도 영향을 준다.

그이는 또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지도 모르고, 그 친절이 돌고 돌아 어쩌면 나에게 혹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돌아올지도 모른다. 슬픔과 상실 중에도,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도, 내가 가진 것이 많지 않은 순간에도, 오늘도 내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작은 친절을 건네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있는 하루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 중 한 사람이 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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