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칼럼] 우비의 역사
[기상칼럼] 우비의 역사
  • 서귀포방송
  • 승인 2021.04.28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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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준 칼럼니스트.
국내 최초 기상전문기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지속경영교육원장.
제9대 기상청장(2011.2~2013.3). 전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위원.
(사)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회장
조석준 칼럼니스트
조석준 칼럼니스트

비가 올 때 물에 젖지 않으려면, 우산이나 비옷, 장화 등 각종 장구를 착용해야 하는데 이것을 모두 우비(雨備)라고 부른다. 우비는 우리나라처럼 사나흘에 한번 꼴로 비가 내리는 지역에서는 중요한 생활 필수품의 하나가 된다. 인류 초기의 수렵문화에서는 식물의 큰 잎이 우산처럼 쓰였고, 동물의 모피는 그대로 비옷이 되었다. 그 후에 농경문화시대로 접어들어 집단생활을 하면서 우비는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도 사용됐다. 그 재료로는 식물의 잎, 나무껍질 그리고 짐승 가죽 등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비에 관계없이 일을 해야 되는 노동자 계층이 생겨나면서 우비류가 오늘날과 같은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우비에는 옷처럼 입는 우의류와 우산, 삿갓류가 있고, 또 발에 신는 장화가 있다. 우의류는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하는 방수천의 발달과 더불어 발전을 거듭했다. 초기에는 들기름을 칠한 유지로 비옷을 만들었는데, 19세기 후반에 고무를 붙인 천을 발명한 이후 우비산업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오늘날 같은 레인코트는 1823년에 영국의 머킨터시>라는 사람이 고안했는데 그는 기존의 오버코트에 방수재료를 칠해서 레인코트를 만들었다.

우산류는 원래 동양에서 생겨났는데 처음에는 주로 햇빛을 가리는 양산으로 사용되었다. 순수하게 비를 맞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우산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우산을 여자들이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들고 다니는 장식품 정도로 생각했었다. 또 오늘날에 흔히 볼 수 있는 고무장화가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이것이 2차 세계 대전 이후 합성수지산업이 발달되면서 대중화되었다. 비교적 발달이 늦은 이유는 다른 우비에 비해서 필요성이 적은데다가 이전의 가죽구두가 방수효과가 있었고 우리나라의 나막신처럼 나라별로 나무로 만든 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경국가인 우리나라는 빗속에서 들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도롱이, 삿갓, 나막신 등 독특한 우비가 발달하게 되었다. 도롱이는 짚이나 띠 같은 풀로 두껍게 엮어 만들어 서양의 망토처럼 어깨에 걸쳐 입는데, 양 팔 부분은 활동이 편하도록 조각을 따로 붙였다. 삿갓은 갈대를 쪼개서 엮어 만든 것으로 중앙이 뾰족하게 위로 솟아 있고, 둘레는 육각으로 하여 머리에 쓰도록 했다. 대나무로 만든 삿갓도 있는데 여름에는 햇빛을 가려 주고, 비가 올 때는 우산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갖가지 재료가 발달하면서 다양한 우비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레인코트나 레인해트는 물론이고 구두덮개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요즘은 우산이나 비옷, 장화에도 다양한 패션이 도입되면서 비오는 날의 거리 풍경이 다채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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