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 칼럼] 인류 최초의 농작물, 보리 이야기
[인류문명사 칼럼] 인류 최초의 농작물, 보리 이야기
  • 서귀포방송
  • 승인 2021.03.26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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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칼럼니스트.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저서) 유대인 이야기, 세 종교 이야기 등 다수
홍익희 칼럼니스트
홍익희 칼럼니스트

보리도 밀과 함께 인류 최초의 농작물이었다. 게다가 재배가 아니라 처음 먹게 된 역사를 따져보면, 보리가 오히려 밀이나 쌀보다도 앞선다고 할 정도이다. 보리가 야생종에서 재배종으로 변한 것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이집트 아스완 부근에 위치한 와디 쿠반야유적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17,00015,000년의 구석기시대 후기로 추정된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보리는 그 뿌리를 터키 남부와 티베트에 두고 있다. 그 후 보리는 유럽과 중국 등지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보리는 기후와 토질을 막론하고 매우 잘 자라는 작물이다. 이 특징 덕분에 다양한 환경에서 재배가 가능해 많은 지역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퍼져갔다. 이러한 보리가 한반도지역으로 전파되어 재배되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자들은 그 시기를 기원전 5~6세기로 추정한다.

보리의 크나큰 장점은 바로 그 경이로운 생명력이다. 보리는 그 생명력이 뛰어나 가을에 파종만 해 놓으면 추운 겨울에 강인하게 자라서 초여름에 열매를 맺는다. 농약도 필요 없어 유기농 식품으로 키우기 쉽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쑥조차도 겨울에는 뿌리만 땅속에서 그 생명을 유지하는데 보리는 혹한의 추운 땅에서 왕성하게 자라는 걸 보면 보리는 쑥보다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고대 수메르 지역에서 소금기가 지하에서 올라와 밀농사를 못 짓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한 농부가 이를 보리로 대체해 농사지을 정도로 보리는 염분에도 비교적 강한 내성을 갖고 있다. 추운 겨울에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보리는 현대과학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를 품고 있다.

보리와 밀, 이 둘은 특히 겨울에 농사를 짓기에 잡풀도 없고 벌레도 없어 무공해 농사가 가능한 놀라운 작물이다. 게다가 겨울에 땅을 놀리지 않고 작물을 심어 흙의 생명을 지켜주는 환경 파수꾼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20세기 들어 보리가 밀이나 쌀 등으로 대체되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선 보리가 전통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로코나 몰도바, 라트비아 지역은 지금까지도 보리가 주식이다.

인류가 석기시대의 수렵채취 생활을 마감하고 한 곳에 정착하여 밀과 보리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경제사를 제도발전 차원에서 다룬 공로로 노벨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 교수는 이를 신석기혁명이라 명명했으며 이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큰 변화로 보았다. 그만큼 보리는 밀과 더불어 인류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식량이었다.

보리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맥주 아닌가. 맥주는 보리의 씨앗을 싹 틔운 맥아로 만든다. 또한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서양인들이 사랑하는 위스키 역시 보리로 만든다. 몰트위스키의 몰트’(malt)가 바로 맥아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기원전 4,200년경의 모뉴멘트 블루점토판이 있다. 거기에는 수메르 사람들이 방아를 찧고 맥주를 빚어 니나 여신에게 바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이 점토판을 해독한 결과, 수메르인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보리로 만든 빵을 물과 함께 섞어서 자연발효 시켜 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맥아를 이용한 전통음료가 사랑받아왔으니, 바로 식혜다. 달고 시원해 갈증을 날려버리는데 그만인 식혜의 핵심 재료는 엿기름인데, 이 엿기름이 바로 맥아를 의미한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보리를 물에 담가 두어 싹을 내서 말린 것이 엿기름이다. 신석기시대에 인류는 이미 곡식의 싹을 틔우면 소화하기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실제 곡물이 발아하는 과정에서 효소인 디아스타제가 만들어져 곡물의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단맛이 나기 때문에 '엿을 만들려 기른 싹'이라는 의미에서 '엿기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옛날에 설탕과 꿀이 귀해 이것을 대신 감미료로 쓰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농작물 보리, 그 역사를 알면서 음식을 먹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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