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 칼럼]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고추 이야기
[인류문명사 칼럼]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고추 이야기
  • 서귀포방송
  • 승인 2021.03.17 0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익희 칼럼니스트.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저서) 유대인 이야기, 세 종교 이야기 등 다수
홍익희 칼럼니스트
홍익희 칼럼니스트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콜럼버스는 후추는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 감자와 고추를 발견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일기에 후추보다 더 좋은 향신료라고 고추를 평했는데, 그만큼 매력적인 맛이었다.

이후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진 고추는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은 유럽인들에게는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16세기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퍼져나간 고추는 현지인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추는 1세기 만에 전 세계로 전해졌고, 많은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었다. 그만큼 고추는 신대륙과 함께 발견한 또 다른 보물이었던 셈이다.

고추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효용의 향신료로 자리 잡았다. 고추는 요리 보존 효과가 뛰어나고, 해충 번식을 예방한다. 때문에 고추가 들어간 음식은 그렇지 않은 음식에 비해 더 오래 상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었다. 또 고추는 잃어버린 식욕을 북돋아주는 기특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고추는 그 종류만 해도 150여 가지에 이른다. 매운 맛도 제각각이다. 기피물질의 특성상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라는 고추가 매운 맛이 더 강하다. 고추는 보통 가루나 소스 형태로 여러 나라에서 애용되는데 고추장 형태로 만들어 먹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출처;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미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서수지 옮김, 사람과 나무사이, 2019. 8)

고추는 우리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향신료이지만, 우리 고추 역사는 불과 4백년 밖에 되지 않는다. 고추가 국내로 들어오게 된 시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임진왜란 즈음에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고추는 포르투갈 무역선에 실려 1540년대 마카오와 중국 무역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일본 규슈까지 전해졌다. 그렇게 고추는 일본을 거쳐 지금의 부산인 동래의 왜관(일본인 무역관)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고추 재배가 경상도 일대로 퍼져나간 것이다. 재배도 어렵지 않은 덕분에 고추는 남에서 북으로 점차 확산되었다.

여기서 고추의 단짝 음식, 김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한 김치는 고추 맛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식이다. 하지만 김치가 원래부터 매웠던 것은 아니다. ‘국물이 많은 절인 야채란 의미의 침채(沈菜)’가 김치의 어원인데, 여기에 고추를 넣어 담그게 된 것은 1700년경부터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마늘이나 산초, 생강, 파 등을 매운 맛을 내는 향신료를 사용하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발효시켜 먹었다.

1614편 편찬된 <지봉유설>에선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되었다 해서 ()개자라 불렀으며,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왜초라고 일컬었다. 당시엔 고추를 일본인(왜놈)이 조선인을 독살할 목적으로 가져온 독초로 취급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해오다 향신료 가격이 오르면서 점차 고추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18세기 들어 고추가 김치나 젓갈의 변질 방지와 냄새제거의 용도로 사용되면서 비로소 매운맛의 재료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뒤 고추를 고초(苦草, 苦椒)라고 불렀는데 이는 후추같이 고미(苦味), 곧 매운 맛을 내는 식물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고추의 매운 맛이 서민들 밥상에 정착하게 된 것은 불과 19세기 초였다. 한국 요리가 맵다는 고정관념도 실제로는 2백 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고추, 이렇게 매력적인 고추는 우리 민족과는 때려야 땔 수 없는 찰떡궁합의 향신료이다. 수치로 봐도, 우리나라는 1인당 1일 고추 소비량이 7.2g에 달해, 전 세계에서 가장 고추를 많이 먹는 민족이라고 한다. 심지어 매운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유일한, 명실상부한 매운맛 대국이다. 이제 고추의 알싸한 그 매운 맛은 세계인들이 자꾸 찾는 맛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머지않아 김치의 세계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귀포방송을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이 서귀포방송에 큰 힘이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