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칼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기상정보
[기상칼럼]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기상정보
  • 서귀포방송
  • 승인 2020.12.03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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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준 칼럼니스트.
국내 최초 기상전문기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지속경영교육원장.
제9대 기상청장(2011.2~2013.3). 전 세계기상기구(WMO) 집행위원.
(사)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회장
조석준 칼럼니스트
조석준 칼럼니스트

수천 년의 인류 역사를 통해서 작은 규모의 전쟁이라도 전혀 없었던 해는 거의 없다. 전쟁이 나면 승패가 엇갈리면서 온갖 변화가 일어난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전쟁의 승패 요인으로 기상변화가 크게 작용한 예가 많았다.

이순신 장군이 바람이 세차게 불고 물살이 드센 울돌목이라는 곳으로 왜군을 유인해서 격퇴했다. 또한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은 장마로 불어난 강물을 이용해서 수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기상 변화의 본질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예측이 가능해졌던 20세기 초부터는 기상을 전쟁에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은 대기의 상층에서 일본에서 미국 쪽으로 불고 있는 제트 기류를 이용해서 기구 폭탄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본토까지 날려 보냈다.

날씨 변화나 기상 상태는 승패의 영향을 주지만 맨 처음 전쟁을 발단시키는 역할도 한다. 옛날에는 우선 기후가 좋고 살기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많았다. 추운 지역의 북방 민족이 남쪽 나라와 전쟁을 하는 경우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한 집단이 살고 있는 지역에 홍수나 한발, 추위 등이 닥쳐서 어쩔 수 없이 대이동을 하게 될 때는 주변의 다른 집단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유럽에서 있었던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부동항을 확보해서 태평양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러시아의 남방 정책도 그 좋은 예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강추위와 폭설 등 소위 동장군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모스크바 침공을 강행했다. 그 결과 무참한 패배를 겪게 된다. 그로부터 140여 년 뒤인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히틀러 역시 시베리아의 추위와 폭설 앞에 무릎을 꿇는다. 12세기 일본 본토를 침공하려던 몽골의 전함 군단은 지금의 대마도 부근 해협에서 태풍을 만나 전멸하게 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 시기에 부는 바람을 신이 불어주는 바람이라 해서 일명 신풍이라고 부른다.

전쟁에 있어서 날씨를 잘 이용한 사람으로는 삼국지의 영웅 제갈공명을 꼽는다. 그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시기를 예측해서 기습적인 화공법을 성공시킨다. 2차 세계 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의 아이젠하워 장군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기상 정보를 이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기상학자들에게 상륙 지점과 날짜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기상 전문가들은 노르망디 해안의 기상 특성과 조수의 흐름 등을 연구해서 적군이 방심하기 쉬운 날을 예측하여 그 역사적 승리에 기여하였다.

20세기 후반부터는 날씨를 인공적으로 변화시켜 그것을 전쟁에 이용하는 이른바 기상무기가 등장하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지난 1967년 미국은 상대의 보급 활동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호치민 루트를 중심으로 남북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일대에서 사상 최고의 인공 강우 작전을 폈다. 2602대의 비행기를 동원하여 구름 속에다 구름의 씨가 되는 옥화은과 요오드화은을 끊임없이 뿌렸다. 이 작전에 참가했던 한 조종사의 얘기로는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상 무기는 또 다른 부작용, 예를 들어 엉뚱한 지역에 예기치 못한 현상이 나타난다든가 원래의 자연 질서가 파괴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개발을 자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날씨는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에 관한 정보는 군사 작전에 이용되고 있다. 큰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른 분야처럼 기상 기술도 향상된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 끝에 얻어지는 발전이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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