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칼럼} 속도 속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아
[자기계발 칼럼} 속도 속에서는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가 나오지 않아
  • 서귀포방송
  • 승인 2020.11.13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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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칼럼니스트. 지식생태학자.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교육공학박사. 삼성인력개발원. 한양대학교 교수
유영만 칼럼니스트
유영만 칼럼니스트

끝을 알 수 없는 사하라 사막. 2014년에 67일간 250킬로미터를 횡단하는 사하라 사막 레이스에 도전했었습니다. 사막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 할지라도 내 두 발을 움직여 걸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목적지를 향해 무조건 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두 발을 움직여 걷다보면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은 사막언덕이나 협곡을 도중에 만나게 됩니다. 달리는 속도만큼 주변을 볼 수 있는 여유도 줄어듭니다. 달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각도는 줄어듭니다.

속도速度는 세상을 보는 각도角度를 바꾸고 삶을 바라보는 각도를 획일화시켜왔습니다. 획일화된 각도는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고도 늘 같은 생각으로 같은 깨달음을 반복하는 습관의 덫을 씌워버립니다. 습관의 덫에 걸린 속도는 타성을 만들었고, 타성은 이제 하나의 관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돛을 더욱 높이 달고 더 빠르게 질주하는 현대인은 각도 속에서 구도構圖를 잡거나 구상構想할 시간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구상할 시간을 속도에 빼앗긴 현대인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그 속도에 몸을 싣고 허우적거리며 속전속결速戰速決로 일을 처리해버립니다.

속도는 깨달음의 길로 가려는 현대인에게서 자신의 의지대로 구도構圖잡을 수 있는 시간을 빼앗습니다. 속도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 즉 각도覺道할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아 스스로 삶을 각성覺醒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속도를 멈추고 다른 각도에서 삶을 관조해야 각성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각도는 다른 각성을 불러오며 다른 각성은 다른 구상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남다른 구상은 아홉 번 굽은 양의 창자,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미덕에서 비롯됩니다. 구불구불한 구절양장은 고통과 고뇌를 낳지만, 그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비상한 아이디어가 잉태됩니다.

속도는 직선에 미덕이 있음을 암묵적으로 강요해왔습니다. 각도가 없는 직선의 촉급함이 가장 중요한 생존 가치와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각도를 다르게 가지려면 속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속도에 갇혀 있는 한 삶을 바라보는 각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구도는 구상에서 비롯됩니다. 속도는 구상할 시간을 빼앗아갑니다. 구상 없는 구도는 삶을 구질구질하게 만들 뿐입니다. 속도를 줄여야 삶의 각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삶은 빠르게 피폐해집니다.

 

나를 키우는 물음표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속도를 냈는가? 주어진 일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느라 일상의 소중한 가치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속도에 익숙한 나머지 다른 각도로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금은 속도보다 각도가 중요한 때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지금,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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