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칼럼] 리더의 힘
[글로벌경영 칼럼] 리더의 힘
  • 서귀포방송
  • 승인 2020.10.28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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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충 칼럼니스트. 도시계획박사.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청장. 주 우루과이 대사. 울산도시공사 사장

후안 페론, 피델 카스트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다니엘 오르테가, 우고 차베스... 우리 귀에 익은 이름들이다. 이들 이름이 갖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중남미 각국의 장기 집권자들이다. 짧게는 10, 길게는 50년 가까이 권좌에 머물면서 나라를 좌지우지했다. 사실 중남미지역 독재자 계보를 따지자면 이들 외에 대선배(?)들도 적지 않다.

최연충 칼럼니스트
최연충 칼럼니스트

우선 쿠바에는 전후 25년간 집권했던 풀헨시오 바티스타가 있었다. 그의 부패와 폭정이 훗날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을 불렀다. 니카라과는 소모사 3父子가 차례로 대권을 이어가며 1936년부터 장장 43년간 절대권력을 누렸다. 파라과이에는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가 있었다. 무려 여덟 번이나 대통령을 연임하며 1954년부터 1989년까지 파라과이를 철권통치했다. 앞에서 열거한 후안 페론은 11년간, 피델 카스트로는 49년간, 피노체트는 16년간, 다니엘 오르테가는 23년간, 우고 차베스는 14년간 권좌를 지켰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도 2005년부터 현재까지 14년째 집권하고 있다.

이쯤되면 중남미 각국은 예외 없이 장기독재를 겪었거나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남미 국가들이 방대한 국토와 풍부한 부존자원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세계사의 변방에 머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희망이 아주 없는건 아니다. 중남미지역의 정치 풍토에 비추어볼 때 극히 예외적인, 보석처럼 빛나는 리더가 있으니, 바로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무히까(Jose Mujica).

호세 무히까는 1935년생으로 몬테비데오 인근 시골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부터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며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1960년대 군사독재 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도시게릴라단체인 뚜빠마로스(Tupamaros) 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13년간 옥살이를 하였다. 1985년 석방되어 제도 정치권에 투신한 후 1994년 상원의원, 2005년 농목축부장관을 거쳐 2010년 우루과이의 제40대 대통령에 오른다.

그는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함으로써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불린다. 그는 평생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천성적으로 격식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다.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후줄근한 티셔츠에 낡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공식 대통령 관저를 마다하고 시내에서 30km 이상 떨어져 있는 사저에서 출퇴근했다. 사저라고 해봐야 1,000평도 안되는 작은 농장이다. 그곳에서 직접 트랙터를 몰며 농사를 짓고 화초도 재배한다. 대통령 월급의 90%는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자신은 최소한의 생활비만으로 살았다. 그는 늘 절제를 강조한다.

201210월에 대통령의 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농장이라 하기도 민망할 만큼 허름했다. 20평 남짓한 관리동은 외벽 곳곳에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슬어있는 누옥이었다. 대통령 부부가 기거하는 숙소라고는 믿기지가 않았다. 관리동은 침실 하나에 거실 하나, 거기에 작은 부엌이 딸린 게 전부다. 대통령은 직접 부엌에서 반병쯤 남은 위스키와 짠지 안주를 챙겨오시더니, 자기로서는 이 정도가 최고의 손님 접대라면서 소탈하게 웃으셨다. 그렇게 위스키를 마시며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화제도 다양하여 국내 현안과 국제정세를 넘나들고, 사람 사는 도리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었다. 그가 가진 깊은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청빈함이지만, 그것만이라면 훌륭한 리더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거기에 더하여 뚜렷한 철학과 경륜, 지혜를 두루 갖춘 분이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처해있는 우루과이가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가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를 늘 고민한다. 환경 보전, 청정에너지, 물류 개선, 교육 개혁 등 앞서가는 정책들은 그 결과물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상도 대단하다. 콜롬비아 평화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 물꼬를 틔웠다. 인도적 차원에서 시리아 난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도 그였다. 그는 국민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 2015년 퇴임했다. 퇴임 당시의 지지율이 취임시보다 더 높은 65%였다. 세계적으로 드문 일이다.

우루과이의 국민소득은 오늘날 중남미에서 1~2위를 다툴 만큼 높다. 사회는 안정되어 있고, 행정시스템, 교육, 환경, 치안 등 모든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강소국이다. 무히까 대통령이 이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집권 기간중 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다른 중남미 지도자들과는 뚜렷이 차별화된다. 어떤 인물이 리더가 되어 국가를 이끄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명운은 극명하게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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