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개혁칼럼] 부족함이 경쟁력이다
[의식개혁칼럼] 부족함이 경쟁력이다
  • 서귀포방송
  • 승인 2020.10.2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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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 칼럼니스트. 한스컨설팅 대표.
미국 애크런대 공학박사. 대우자동차 최연소 이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한근태 칼럼니스트
한근태 칼럼니스트

세계에서 물 관련 기술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유는 물이 가장 부족한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연간 강우량은 200에서 500밀리미터 정도이다. 1967년 벌어진 6일 전쟁도 물 때문에 일어났다. 시리아가 이스라엘 최대 수자원인 갈릴리 호수로 들어가는 물길을 차단하는 댐을 골란고원에 건설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시리아를 침공해 골란고원을 빼앗은 것이다. 유일하게 사막화 진행을 막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세계시장 점유율 50%를 넘는 해수 담수화 기술 선진국이다. 세류관개 기술을 개발해 물소비 대비 최대 농작물을 산출하는 선진 농업국가이다. 물의 가성비를 높인 것이다. 메마른 땅에서도 바나나 재배가 가능하도록 점적관수 기술도 개발했다. 불모지에 수박, 토마토, 오이, 가지, 파프리카 재배가 가능하도록 했다. 모세혈관 같은 튜브를 연결해 작물이 필요한 만큼의 물방울과 영양분이 떨어지게 하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2000톤으로 1,000제곱킬로미터의 바나나 농장을 운영한다. 이 기술 특허를 낸 네타핌이란 관수 회사는 연 매출이 8억 달러가 넘는 대기업이 됐다.

가장 좋은 장미향은 유럽의 발칸반도에서 나온다. 불가리아의 험준한 발칸산맥이 주 생산지이다. 이곳 발칸산맥의 장미계곡에서 세계 장미 원액의 70%가 생산된다고 한다. 그런데 장미를 언제 채취하는지 아는가? 가장 춥고 어두운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채취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한밤중에 최고의 향기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추울 때 딴 꽃이 더 향기롭고 더 오래 지속된다고 한다. 이렇게 만 송이를 모아야 겨우 100그램의 향수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원예사들이 척박한 모래판에 꺾꽂이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모래판에 꽂으면 부족한 영양소를 끌어들이기 위해 땅속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누구나 풍요를 꿈꾼다.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 있고 풍요롭게 살기를 희망한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많고 유유자적하는 그런 삶을 꿈꾼다. 근데 사실 풍요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돈도 그렇다. 100세에도 현역 활동을 하는 김형석 교수는 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돈이 너무 많으면 돈의 노예가 된다. 돈을 벌고 관리하고 유지하느라 다른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돈은 중간 정도가 좋다. 경제적으로는 중산층, 정신적으로는 상류층이 바람직하다.” 나 역시 여기에 공감을 한다. 돈이 없어 남에게 손을 벌리는 건 곤란하지만 너무 돈이 많으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돈이 주는 기쁨보다는 돈 때문에 오는 고통을 많이 겪을 것 같다. 돈은 좀 부족한 듯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돈을 더 벌고 싶고 돈을 벌 때 기쁨도 같이 올 것 같다.

음식도 그렇다. “좀 부족한 듯이 먹어라.”란 말을 많이 들었다. 젊어서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 그만 먹어야 하지?’란 의구심을 가졌다. 요즘은 그 말을 이해한다. 먹고 싶은 만큼 먹었을 때의 결과는 비만과 당뇨이다. 시간도 그렇다. 시간도 시간에 쫓겨야 시간의 귀중함을 알 수 있다. 시간이 남아돌면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시간이 넘쳐난다고 영양가가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시간을 잘 활용할 때 삶의 질도 올라간다. 글도 데드라인에 쫓길 때 잘 써지고 휴식도 바쁜 와중에 틈을 내 쉬어야 더 달콤하다.

개인이나 조직이나 단기적으로 잘살 수는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잘살기는 쉽지 않다. 지속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하나가 의도적으로 부족한 듯 사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결핍을 만드는 것이다. 그게 절제이다. 돈을 더 벌 수 있지만 그만 버는 것, 더 먹고 싶고 먹을 수 있지만 중간에 멈추는 것, 모든 것을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않는 것, 권력이 있지만 맘대로 휘두르지 않는 것 등이 바로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을 쓸 때 하루 20장 정도만 쓴다고 한다. 더 쓸 수 있어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문센 역시 남극정복을 할 때 날씨 관계없이 하루 일정량만을 걸었다. 더 갈 수 있었지만 절제했던 것이다. 없어서 부족하게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지만 부족하게 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난 그렇게 살고 싶다. 부족함이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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