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섬에 공항 두 개는 필요 없다
(기고) 섬에 공항 두 개는 필요 없다
  • 서귀포방송
  • 승인 2020.02.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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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이후 간신히 일궈온 공동체 파괴는 있어서는 안 된다!
김순애(조천읍 함덕리 주민)
김순애
김순애

제주를 만나고 싶어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에서 진행한 도보순례에 참여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도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제주라는 지역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참 어려운 곳이다. 같은 마을 안에서 오순도순 지내야 하는 도민들이 한 사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주장을 내세우며 얼굴을 붉히는 것은 살아가는데 구체적인 도움은 주지 않고 불편함의 경험만 안겨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러한 목소리와 주장은 소수의 것으로 독점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마을의 00위원회나 00협의회 등의 대표들은 마을 주민들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도 자신의 확신을 마을의 의견인 양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들을 둘러싼 일부 그룹의 목소리가 곁들여 있겠으나 다수의 마을주민들 목소리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나는 제2공항 문제에 있어서 강렬한 목소리를 내는 층을 세 그룹으로 보는데 한 그룹은 제2공항으로 인해서 당장 삶의 터전을 잃어야 하는 생존권의 문제가 걸려 있는 지역 주민 그룹, 다른 하나는 제2공항 건설로 인해 부동산 상승, 건설 토목 일거리를 수주하는 등의 직접적인 이익을 받을, 이익 당사자 그룹, 그리고 나머지는 어떤 직접적 이해관계는 없지만 여러 가지 판단 근거에 의존해 제2공항 건설이 불합리한 결정이며 제주에 어두운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그룹이다.

내가 듣고 싶은 목소리는 여론 조사를 통해 수줍게 의견을 내는 도민들의 숨겨진 목소리였다. 제2공항 관련 여론은 2015년 발표 당시 7:3으로 찬성이 우위를 차지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다. 여러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찬반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와중에 도민들의 의견을 듣고 제2공항 건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차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흐름 안에 내재되어 있는 도민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전 일정을 함께 하지는 못하고 토요일 중심으로 참여했다. 1월11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동복리를 시작으로 함덕까지 걷고 1월 18일 역시 같은 시간 동안 하귀 하나로마트에서 애월까지 걸었다. 나중에 만보기를 살펴보니 내가 걸은 걸음이 대략 2만8천보에서 3만3천보 정도 되었다.

마을 안길을 다니다보니 여유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시청 앞에서 말을 걸거나 홍보지를 나눠주며 접하는 이들에게서는 걸음을 재촉하는 냉담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마을길을 걸어 다니며 만난 이들, 혹은 문을 노크하고 인사를 청해 만난 이들은 홈그라운드라는 점 때문인지 훨씬 여유 있고 솔직한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하루는 햇볕이 봄날처럼 따스했고 하루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도보순례자 입장에서 겨울 날씨답지 않은 따사로운 볕을 반겨야 했지만 최근 제주의 날씨 경향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전국과 비교해서도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제주 해수면, 말라죽어가는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풍성한 해조류와 물고기들을 품지 못하는 제주 바다. 먼 미래처럼 보이는 현실들이 서서히 우리 앞에 다가와 있고 제2공항 건설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급격하게 진행시킬 것이다.

동복, 함덕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집에 계신 여자 삼춘, 혹은 구멍가게에서 낮술하시는 남자 삼춘, 가게를 지키고 있는 이들, 고향 집에 돌아와 앞으로 살 집을 수리하고 계시는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 동부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제2공항 찬성 여론이 높게 나와 세화에서 도보를 시작할 때부터 순례단은 잔뜩 긴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오일장 등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제2공항 강행저지 도보순례단을 응원하면서 자신들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고 한다.

나 역시 동복과 함덕에서 만난 이들의 말을 대략 정리해 보았더니 70% 정도의 주민들이 “섬에 공항이 두개씩이나 있을 필요 없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정확한 수치가 아닐 수도 있지만 20%가 지역 경제를 위해서는 공항이 있어야 한다. 10% 주민이 현재 공항이 복잡해서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공항이 필요하지만 현재와 같이 독단적인 방식은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귀에서 애월까지 걸으면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들의 생각도 비슷한 분포를 보여 주었다. 하귀 하나로마트 앞에서 만났던 나이 지긋해 보이는 분은 “젊어서 제주가 너무 좋아서 정말 열심히 일한 후에 나이 들어 제주에 내려왔는데 제주가 매일 같이 망가져서 너무 속상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부모님이 20년 전에 제주에 이주했다는 한 청년은 애월에서 소품샵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주변 지인들이 주거비를 견디지 못해서 전라도로 떠나는 추세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바닷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어떤 이는 나에게 왜 제2공항을 반대하는지 꽤나 자세하게 질문을 던졌다. 내 생각을 이야기한 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본인도 제2공항을 반대하는데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자꾸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물론 편의점에서 만난 한 청년은 제주 공항이 너무 혼잡하고 불편하다며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무조건 제2공항 건설을 반대할 수 없다는 야무진 의견도 주었다.

수많은 이들 가운에 함덕에서 만난, 팔십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삼촌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귀에 생생하다. 잠깐 마당에 나왔다가 이야기가 터진 삼촌은 ‘지독한 4.3을 겪어내고 다 파괴되었던 마을을 간신히 어렵게 살려놓았는데 왜 또 그 마을을 망가뜨리려 하느냐?’며 진심으로 속상해 했다. 삼촌은 그 똑똑하다는 원희룡지사가 “4.3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머리로만 들어서 마을과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게 정말 무엇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이 4.3 당시 겪었던 끔찍한 경험들을 눈물을 글썽이며 그 자리에서 풀어내신다. 눈앞에서 가족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삼촌의 이야기는 그 당시 제주에서 살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나는 그 시대를 겪어온 삼춘을 꼭 안아드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제주도가 작년 말에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2020년 제주도정 정책방향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도민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이 난개발 및 환경 훼손을 일으키지만 그 만큼 도민들의 삶에 기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원희룡지사는 도민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제주도의 권한이 없다며 책임을 국토부에 떠넘기면서도 공항확충지원단을 만들고 제2공항 찬성 여론을 만들기 위해 예산을 투입한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이 그를 눈멀게 하거나 아니면 진실을 외면하게 하고 있다. 4대강 사업에서 문제가 있다면 책임지겠다며 당당하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제주는 함부로 손대지 말아야 한다. 길을 걸으며 만난 도민들은 비록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진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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