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
노혜경,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
  • 서귀포방송
  • 승인 2020.01.05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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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스스로를 리부트 해온
한 시니어 페미니스트의 최전선 페미니즘
도서출판 개마고원

누가 2010년대 후반 한국에 페미니즘이 더 강력해져서 다시 돌아올 줄 알았을까?

1995년 이후 약 페미니즘은 10년간 눈부신 성장을 했다. 그러한 성과로 호주제가 폐지되고 비례대표 여성홀수순번제가 실시되는 등 여성들의 약진이 돋보인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페미니즘은 강력한 백래시에 부딪힌다. ‘~~녀’ 논란 등 온라인을 진원지로 여혐의 메시지가 넘쳐나며, 여성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성폭력이 만연하고 여성 살해가 판치는 사회의 조짐마저 보였다.
그러던 것이 다시 페미니즘이 강력한 목소리로 되돌아왔다. 이런 거대한 변화에 누구보다 놀라며 찬탄을 보낸 건 선배 세대 페미니스트들이다.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졌지만, 독재타도와 노동해방의 구호에 가려져 여성해방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되찾은 목소리가 도로 외면당하는 일들을 다 겪어낸 선배들이다.

그들에게 넷상을 기반으로 한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당찬 목소리는 놀라움 그 자체였으며, 거기에서 큰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맨몸으로 좌충우돌 부딪치며 찔끔찔끔 기어오른 페미니즘적 각성을 후배들은 마치 선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듯한 충격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노혜경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동일방직과 YH무역 사건에서 페미니스트로서 각성하고, 시인이 되고선 문단 내 성차별을 목격하면서 여성시운동을 하기도 했던 이. 나아가 노사모와 개혁당, 그리고 청와대라는 정치 현장과 숱한 거리의 현실정치 마당에도 참여했던 이. 그는 이제 오늘의 ‘페미니즘 리부트’를 맞아,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사유도 리부트하여 이 책에 담아내고 있다.

과거의 사회와 현재의 사회는 여성의 현실에서 어떻게 달라졌는지, 과거의 페미니즘과 지금의 페미니즘은 어떻게 다른지,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페미니즘의 근본 정신과 방향은 무엇인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를 이 책에 담긴 글들의 갈피갈피에서 읽어낼 수 있다.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 페미니즘

지금껏 여성은 침묵하든가 마음에 드는 말만 하라, 아니면 죽이겠다, 라는 위협 앞에서 예쁘게 치장하고 꽃병에 꽂힌 채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입을 열어 말해야 할 차례이다.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물론 잘 안다. 너무 오랫동안 바로 나 자신이 말더듬이로 살아왔던 그 경험자이므로.

이 구절은 저자 노혜경이 2001년 『페니스 파시즘』(공저)에 기고한 글 「말하면 죽인다? 침묵하면 죽는다!」의 한 대목이다. 당시만 해도 남성중심사회에 대항하여 ‘말’을 한다는 건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명망 있는 시인조차도 이렇게 많은 용기를 내서 말해야 했던 페미니즘이 2019년에는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상식적인 것이 되었다.

나는 요즘이 페미‘도’ 아니면 행세하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행세=사람노릇. 물론 기나긴 역사가 따라오고 설명이 있어야 하겠다. 그 모든 것은 이 책에서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권하는 것들이다. 페미니스트는 민주주의자처럼 현대인의 최소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말, 5쪽

나는 그래서 페미니즘을 제2차 계몽주의라 부르고자 한다. 신의 부속물이었던 인간을 이성의 힘으로 해방한 것이 1차 계몽주의였다면, 제2의 성에 불과한 여성이 남성과 나란히 인류의 절반이 되고, 나아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제대로 단독자가 되는 일이 2차 계몽주의의 목표다. -「배운 여자들이 못 배운 남자들을 가르치려 든다고요?」, 26~27쪽

페미니즘을 다른 말로 인간이 되기 위한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단순히 휴먼에 남성과 여성을 포함한 모든 젠더가 들어가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페미니즘이 새로운 사회정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곧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화두를 인식할 때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뭔가요」, 44쪽

이런 대목들에서 엿볼 수 있듯 저자가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태도 또한 2001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억압받는 이의 언어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이 승리하고 있고, 세상은 이미 변화했다는 것. 그것이 자기만족적 희망사항이 아니라 이미 현실임을 실체적으로 보여주는 게 이 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다. 저자는 그것을 이 책의 내용과 어조로서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가볍게, 시시하게, ‘이 별것 아닌 것을 아직도 몰라요? 시대에 뒤떨어지지 마세요’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페미처럼 생각하기’를 연습해요

그래서 이 책은 아직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 해도 혹은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이들이라 해도 ‘계몽’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 페미니즘은 기본이라고, 당신이 남자든 여자든 ‘페미’가 되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과 발맞추고 잘 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일상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다 페미니즘의 렌즈를 들이댄다. 바로 “페미처럼 생각하기를 연습하게 해주는 책이고 싶”은 저자의 바람 때문이다. 이미 대세이자 상식이지만, 동시에 아직은 온전히 대세이자 상식이지 못한 현실에다가 이 책을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뜻에서다.
다양하고 폭넓게 ‘세상만사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주제는 크게 5가지로 나뉜다. 「1부 생각 제대로 하기도 쉽지는 않다」는 페미니즘 개념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2부 세상을 조금 바꾸는 언어」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언어의 문제를 다룬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언어에 대한 비판과 함께 페미니즘의 힘이 언어로부터 나온다는 것이 핵심이다. 「3부 다시 정치를 생각한다」는 페미니즘이 일상의 정치 차원을 넘어 현실정치에서도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정치 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저자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 하겠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그 무엇보다 ‘정치사상’이라고 강조한다. 「4부 모든 폭력의 시작과 끝을 거부하며」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미투, 몰카, 위안부 등에 이르기까지 성을 빌미로 이루어지는 온갖 종류의 폭력 문제를 다룬다. 「5부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는 이 책의 결론으로, 페미니스트의 존재와 실천이 우리 모두의 세상을 보다 낫게 바꿔낸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선배 세대의 무르익은 페미니즘이 후배 세대의 상큼발랄 페미니즘을 만날 때

저자 스스로 고백하길, 자신은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한 최신의 페미니즘 운동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쨌든 변화는 도둑처럼 왔고, 저자는 이런 변화한 지형이 가져온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에다 자신이 겪어온 세월 동안의 체험을 연계시킨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아니 지신온고(知新溫故)라고나 할까? 그런 과정은 최신 페미니즘의 날카로운 사고를 넓은 사회와 깊숙한 역사와 만나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나이 먹은 세대는 요즘의 페미니즘은 어떤 것인지, 젊은 세대는 페미니즘이 어떻게 현실에서 보다 확장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연결과 결속을 위한 책”이기도 한 것이다.

목차
1부 생각 제대로 하기도 쉽지 않다
여자라는 병, 처방전은 페미니즘 | 배운 여자들이 못 배운 남자들을 가르치려 든다고요? | 백만 가지 페미니즘 | 다시 근본적 질문, 뭐가 중헌디? | 그래서 페미니즘이 뭔가요 | 화성남자 금성여자는 지구에선 못 산다 | 광장으로 가는 길

2부 세상을 조금 바꾸는 언어
다른 것과 틀린 것 | 무의식의 말버릇, 술•담배•여자 | 여성적 언어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 성범죄를 변명해주는 언어, 이제 그만! | 세상의 남자는 딱 두 종류라고 합니다 | 다시 성희롱의 문제,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어.” | 성평등, 젠더이퀄리티, 젠더평등, 그리고 평등 | 여류시인이란 말, 이상하지 않으세요? | 헌법적 여성은 어떻게 생겼을까 | 잠재적 가해자 탈출하기 | 강자의 무지는 쉽게 폭력이 된다 | 예언은 진실을 호도하고 사과는 진실을 분장한다 | 현재가 변하지 않으면 과거가 대신 책임을 진다 | 절대적이고 상대적인 김지영 | 페미니즘 영화를 보러 가자 | 캡틴 마블의 피는 원래는 붉었지 | 장자연을 ‘열사’라 부를 수 있을까? | 할아버지와 양성평등, 아니 성평등

3부 다시 정치를 생각한다
박근혜가 드러낸 어떤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 여성정치인, 돌격대가 되지 말자 | 도둑맞은 페미니즘 | 마가렛 대처는 여성정치인일까? | 정상국가 북한과 비정상가족 <마담B> | 축구하는 남자아이와 청소하는 여자아이 그리고 정치적 중립의무 위반 | 여적여? | 8만3000명의 신지예들 | 빵과 장미 | 다시 빵과 장미를 생각하며 | 동성애 반대의 정치적 이유 | 사랑하니까 반대합니다 | 언제나 5월은 또다시 시작된다 | ‘펜스Pence’가 아니라 펜스‘fence’였다 | 선거법이 성평등해질 때 일어날 일들 | 메르켈, 남자도 총리가 될 수 있나요? | 은폐하려는 자들과 기억하려는 자들

4부 모든 폭력의 시작과 끝을 거부하며
악은 평범하다 |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 여‘성폭력’방지라는 국가의 기본 197 | #미투의 올바른 경로 |여고괴담 아니 여중괴담 | 연애와 성폭력, 그 이상한 거리 | 화장실 몰카가 문제가 아니다 | 평등이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 여자친구를 때려죽여도 | 리얼돌과 섹스로봇 | 함무라비 법전이 부활해야 할까? | 난민難民과 난민亂民 | 그들은 왜 2차가해를 할까 | 아이캔스피크 | 타임투킬, 상상하십시오

5부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민 있는 여러분 안녕해볼까요? | 나는 그런 섹스는 싫어. 이런 섹스를 원해 | 아주 특별한 약자 임산부, 배려석이 최선입니까? | IMF 사태는 여성청년에게 무엇을 남겼나 | 어린이책이 덜 팔린대요 | 낙태죄 폐지를 둘러싼 투쟁을 복기하며 | 딸이 독립했다 | 페미니스트도 부동산 투기를 할까 | 엄마아빠 페미니스트가 됩시다 | 엄마는 할매가 된다 281 | 나 혼자 살아야 한다면? |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 선생님이_필요합니다 | 함께여서 강한 우리

저자소개

노혜경: 시인. 1991년 『현대시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1980년대에는 부산가톨릭센터 문화부에서 일하며 여성평우회 초청공연 행사 등을 치렀고, 1990년대엔 열음사 『외국문학』 편집장을 지냈다. 2000년대 ‘안티조선우리모두’를 중심으로 한 언론개혁운동, 노사모 운동, 개혁당 운동 등 사회변혁운동에 뛰어들었다.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을 거쳐 참여정부 국정홍보비서관과 노사모 전국대표일꾼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뜯어먹기 좋은 빵』, 『캣츠아이』,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이렇게 네 권의 시집과 에세이집『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가 있다. 공저로 『페니스 파시즘』과 『유쾌한 정치반란 노사모』를 낸 바 있다.

노혜경, 요즘 시대에 페미도 아니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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