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기팔 시집, '겨울 삽화'

도서출판 황금알, 신국변형판 양장본, 128쪽 15,000원

2023-01-04     장수익 기자
[신간]

서귀포의 원로시인 한기팔 시는 짧은 운문으로부터 터져나오는 강한 울림이 있다. 이것을 시의 정수라 해도 그리 틀림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시의 리듬을 통해 누군가는 메시지를 통해 독자의 가슴에 파고든다. 한기팔은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미지를 읽는다는 것은 그의 시를 이해한다는 의미이며, 그 시세계의 여정에 동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스스로 자신의 천직을 시인이라 말하지만, 그의 작업실은 시뿐만 아니라 그가 직접 그린 그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미지란 ‘언어로 짠 그림’이라는 루이스의 지적처럼, 한기팔 시의 이미지는 시와 그림의 경계를 허문다.

한기팔의 서정시는 그가 견지했던 창작 자세와 시어에 대한 엄결성이 녹아들어 있다. 한기팔 시세계의 특이점으로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그의 회화적 특장에서 비롯된 이미지의 현현일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장점을 시 창작 방법론에 접목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와 같은 노력들이야말로 감각적 서정시의 한계를 넘어서서 그를 독창적인 시세계로 이끈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지연, 시인·문학박사)

*한기팔 시인의 말

한 권의 '시선집'을 제외하고는 열 번째의 시집을 묶는다. 그것들은 모두 내 삶의 현장의 것들이었다.

오늘은 비! 알몸으로도 풀꽃 하나 봉오리를 맺지 못하는 자갈밭이 젖고 있다. 귀갓길에서 만난 늙은 농부가 갈다 남은 자드락밭이 젖고 있다.

서울 다녀올 일만 남아 있다. '황금알' 출판사의 김영탁 주간께 고마운 뜻을 전하고 싶다.

 

<먹>

퇴직을 하고 나니

먹 가는 일이

많아졌다.

 

먹을 간다는 것은

자강불식

나를 가는 일,

 

나를 갈면서

말문이 닫히니

말 대신

글,

 

먹을 갈면

없어지고 말지만

먹물로 쓴 글씨는

오래 남아

 

마지막 저녁 빛이

서쪽 하늘에

부챗살로

걸리듯…

 

*저자소개

한기팔 시인은 1937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1975년 '심상' 1월호에 '원경' '꽃' '노을' 등이 박목월 시인 추천으로 신인상에 당선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서귀포' '불을 지피며' '마라도' 풀잎 소리 서러운 날' '바람의 초상' '말과 침묵 사이' '별의 방목' '순비기꽃' '섬, 우화' 등이 있고, 시선집 '그 바다 숨비소리'가 있다. 제주도문화상, 서귀포시민상, 제주문학상, 문학아카데미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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