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 오안일 선생의 ‘옛 제주인의 샘’ 이야기]
(8)부지런히 몸을 움직여라
- ‘옛 제주인의 샘’ 제1집 제3장 「가치」에 수록
저마다 만물은 그 만물에 해당하는 가치를 갖고 있다. 인간도 인간이 갖고 있는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하며 노력함은 물론이거니와 최대한 그 지닌 가치를 실현하도록 하여야 한다.
인간의 가치는 참다운 생활을 하는 것이다. 혼탁한 세상, 갈등과 투쟁의 세상을 평정하고 안전과 평화를 위한 세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또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만큼이나 어둠을 밝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별은 스스로 빛을 낸다. 인간이 이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들이 수반됨은 물론이다.
먼저, 매사에 부지런해야 한다. 성실하게 몸을 움직여야 한다. 모든 여건과 환경을 인간 생활에 도움이 되고 유익하게 되도록 일해야 한다.
제주의 선조들은 정말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살아왔다. 화산 폭발로 인한 돌무더기가 가득한 척박한 땅을 부단히 일구고 가꾸며 이처럼 풍요롭고 아름다운 밭으로 만들어 오지 않았는가. 인류는 채집 경제에서 농경사회로의 변화를 밭과 함께 시작했다. 그것은 경작지의 최초는 밭이라는 것을 뜻한다.
가끔 도외 문인들과 동행하여 본래적인 제주의 모습을 돌아보고 살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곳자왈이나 감귤 밭이나 여러 가지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는 밭들을 둘러보곤 한다. 가시덤불과 여러 덩굴들 그리고 돌투성이인 곳자왈을 보고 나서 잘 가꾸어진 밭들을 돌아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농장 창고에 갖추어져 있는 골갱이의 뾰족한 날을 보면서도 참 신기해한다. 제주의 들판은 전부 돌투성이였다. 척박한 땅에서는 제대로 된 농사가 안 되어 화전민들이 모여 살았다. 제주의 밭 비율은 전국에서 제일 높은 편이다. 나무와 덩굴과 가시덤불과 돌로 울창한 곳자왈에 불을 지르고 비옥한 밭으로 만드는 과정은 말 그대로 아주 고단한 개간사업이었다.
크고 작은 돌들을 경계에 쌓으면 곧 제주 돌담이 되었으며 끝이 뾰족한 골갱이를 이용하여 잡초를 제거하고 씨앗을 뿌려 여러 작물들을 재배했던 것이다.
다들 힘든 농사일 이였지만, 그 중 조밭농사 김매기가 제일 어려웠었다 한다. 가끔 제삿집에 어르신들이 마루 한가득 앉아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꽃을 피울 때면, “요즘 아이덜, 아멩 힘들다 해도 땡볕에 조밭 검질 한 번 매어 보라, 막 머리가 어질어질허곡 땀이 비오듯 쏟아지쥬”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밀감밭 허명 펜안해졌주, 막 펜안해졌주” 활짝 웃으시곤 하셨다.
밀감밭이라고 하여 어디 일이 쉬울까마는 그나마 고됨의 강도가 다소 덜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늦가을 감귤 수확 철에 백두선생의 밭에 가 본 적이 있다. 굵은 소나무 아래 산비탈처럼 되어 있는 밭에는 수십 년 된 귤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져 있었고 황금 귤들이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그 눈부시도록,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밤하늘의 별처럼, 귤들은 귤나무들은 제주태생인 나에게도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귤 밭 한 귀퉁이에는 개간의 역사도 남아 있었다. 귤밭을 위하여 골라내어 모아둔 붉은 송이 돌들이 무더기로 쌓아져 있었고 베어낸 나무 그루터기들이 한 쪽에 하얀 뼈대만 남기고 있었다.
“저 나무들은 누가 베었어요?” “제가 다 자르고 옮겨놓은 거지요” 라고 말씀하셨다. 감탄사가 나왔다. 그래서 그 열정으로 ‘감귤원 가는 길’ 이라는 시집도 내셨나 보다. 바로 이처럼 제주의 밭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 땀과 노력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진 것이었다.
백두 선생은 “우리 인간은 천사의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이루는 가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 자신의 개성에 맞는 일, 자신이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잘 할 때 가치가 있게 됩니다.”
“가치가 큰일을 할수록 위대해 지는 것이며 명예가 빛나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유희적 존재가 아닙니다. 안전과 평화와 행복을 이루고 지상낙원을 이루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먹고 활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괴로움에 처할수록 일과 운동을 더 열심히 하십시오” 라고 강조하셨다.
‘돌아댕기당 보민 생기는 거 이신다’ 이거나 ‘‘바당에 궐허지 말앙 댕기당 보민 호루는 장군헌다’라는 흔한 제주 속담들은 이미 삶의 지혜와 철학을 뛰어넘은 명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움직여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라. [글 문상금 시인]
* 옛말 : 먹은 ᄋᆞᄆᆞᆼ 해여사 ᄒᆞᆫ다.
(먹은 대가로 몸을 움직여 일을 하여야 한다)
* 문상금 약력 *
○ 1992년 심상지 <세수를 하며>외 4편으로 등단
○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심상시인회, 제주펜클럽, 제주문인협회, 서귀포문인협회 , 한국가곡작사가협회 , 숨비소리 시낭송회 회원
○ 서귀포문학상 수상
○ 시집 ‘겨울나무’ ‘다들 집으로 간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있기 때문이다’ ‘꽃에 미친 여자’ ‘첫사랑’ 펴냄
○ (현) 작가의 산책길 해설사회 회장
○ (전) 서귀포문인협회 회장, 숨비소리 시낭송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