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시인 시시콜콜 제주살이(13)
글 사진 정희성 농부시인
2019-02-06 서귀포방송
농부시인 시시콜콜 제주살이(13)
시절이 소란스럽고 하수상하여 씁쓸합니다.
설 명절, 구순 바라보는 홀어머니와는 서울-제주 거리로 떨어져 있어 쓸쓸합니다. 묵은 때를 벗기러 왔으나 오래 전부터 아버지의 깡마른 등이 없어 쓸쓸합니다. 그래도 설 명절이니 뿌연 증기에 기대어 눈물을 감춥니다.
새해 큰 비나리는 없으나, 나를 기억해주고, 내가 이름을 간직해온 이들이 평안하기를 욕심내 봅니다.
머릿속이 헝클어질 때는 손놀림이 약입니다. 사랑채로 들일 화목난로에 칠을 새로 입힙니다. 십 년 전, 제주 살러 간다고 하자 선후배들이 갹출하여 집들이 선물로 사준 제주 신접살림 1호입니다. 세월의 더께, 해묵은 녹을 걷어내고 건재상에서 산 흑색 내연도료를 칠하니 말짱하니 새것같습니다. 내심 설빔을 마련해준 듯해 뿌듯합니다.
마무리로 연통을 걸어 군불을 땝니다. 이렇게 해주어야 내연도료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없어집니다.
내일은 난로를 설치하려 합니다. 설치다보니 하루해가 설핏 기울고 쓸쓸함은 조금 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