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 칼럼] 쌀농사의 한반도 기원설
[인류문명사 칼럼] 쌀농사의 한반도 기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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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08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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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칼럼니스트.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저서) 유대인 이야기, 세 종교 이야기 등 다수
홍익희 칼럼니스트
홍익희 칼럼니스트

근래 우리나라에서 중국보다 앞서 세계 최초의 쌀농사가 이루어졌다는 놀라운 증거가 나와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현재 오창 과학 산업단지가 있는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1997~1998년 지표조사 중에 구석기 유물들과 함께, 고대 볍씨 59톨이 발견된 것이다. 출토된 볍씨는 야생 벼가 아닌 재배 벼였는데, 분석결과는 13000년에서 1500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찍개, 긁개, 홈날, 몸돌, 격지 등 구석기 유물도 발견되었다. 이것은 분명한 최초의 벼 경작 흔적이었다.

이후, 소로리 볍씨는 사실 그보다 더 오래된 약 17천년경의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이 "소로리 볍씨의 절대 연대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개발한 탄소연대 측정계산법 적용 결과, 기원전 15118년으로 나왔다"고 발표했다. , 지금까지는 학명 없이 '소로리 볍씨'로만 불렀으나 'Oryza sative coreaca(오리자 사티바 코레아카)' '한국의 고대벼' 라는 학명도 부여됐다고 전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쌀농사가 세계 최초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농사를 지으려 마을공동체 형성이 그만큼 빨리 이뤄졌다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또한, 한반도가 쌀농사에 적합한 곡창지대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반도의 세계 최초 쌀농사는 씨족사회 발전과 연결된다. 보리나 밀과 달리 쌀농사는 많은 사람들의 힘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서 논을 만들고 물을 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 특히, 쌀농사에 필수적인 모내기와 벼 수확, 배수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과정에서 두레와 마을공동체가 형성된다. 고대 한반도에서는 이렇게 씨족 공동체가 발달해 부족사회를 형성하고, 대규모 치수사업을 통해 국가의 등장도 여타 지역에 비해 빨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쌀은 밀과 보리 등 다른 작물에 비해 생산성이 뛰어나다. 볍씨 한 톨로 700~1000톨의 쌀을 얻을 수 있다. 15세기 유럽에서도 밀을 뿌려 수확한 양은 종자 대비 3~5배에 불과했다. 현재도 밀은 기껏해야 20배 정도의 수확량밖에 얻지 못한다. 반면 벼는 17세기 무렵에 이미 종자 대비 20~30배의 수확량을 얻었고, 현재는 120~140배의 수확량을 올리고 있다.

쌀은 그 깊은 역사만큼이나 세계 곳곳에 다양한 형태로 그 흔적을 남겼다. 특히, ‘아시아는 밥, 유럽은 빵이라는 말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에서 쌀 음식이 더욱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만 해도 쌀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음식들을 보면, , , 한과, 막걸리, 식혜 등 무궁무진하게 많으니 말이다.

그럼, 쌀 요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독자들이 가장 먼저 베트남 쌀국수 포를 떠올리실 것 같다. 베트남 북부에서 프랑스 수프의 영향을 받아 생긴 쌀국수는 베트남이 분단되면서 남으로 전해졌다. 한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주로 밥을 기름에 볶아먹는다. 이들이 먹는 쌀 역시 인디카 품종으로 알곡이 가늘고 길며 푸석푸석해 우리 쌀처럼 찰기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쌀을 기름에 볶아서 먹는데, 말레이시아의 나시레막’,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이 대표적이다.

또한 흥미로운 쌀 요리 중 하나가 카레라이스이다. 커리(Curry)는 아시다시피 인도 요리이다. 이는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의 영향을 받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커리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870년대 일본의 한 유학생이 미국행 배에서 커리를 처음 접한 이후라고 한다.

아시아에 비해 다양하지는 않지만, 서양에도 대표적인 쌀 요리가 있다. 서양에서 벼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이탈리아의 리조또이다. 이름 자체가 쌀을 뜻하는 리소(riso)’와 적음을 나타내는 접미사 (tto)’가 합쳐져 짧은 시간에 만드는 쌀 요리다. 리조또는 16세기경 밀라노에서 만들어졌는데, 당시 파에야태생지인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어, 리조또 탄생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리조또는 이탈리아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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