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사 칼럼] 성스러운 식물, 석류
[인류문명사 칼럼] 성스러운 식물, 석류
  • 서귀포방송
  • 승인 2021.02.0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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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칼럼니스트.
KOTRA 밀라노 무역관장. 세종대학교 대우교수.
(저서) 유대인 이야기, 세 종교 이야기 등 다수
홍익희 칼럼니스트
홍익희 칼럼니스트

석류는 성경에 30회 이상 소개되는 성스러운 식물이다. 유대인의 전통에서 석류는 풍요와 사랑의 상징이다. 석류는 많은 씨앗을 품고 있기 때문에 풍요를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석류가 613개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곧 율법의 개수인 613개에 해당했다. 따라서 석류는 율법의 정신인 체다카곧 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히브리어 체다카는 공동체 내의 약자를 돌보는 정신인데 정의, 또는 공의로 번역되며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랍비들은 많은 석류 알을 사람이 수많은 선행을 하는 것에 비유했다.

또 유대인들은 석류 열매꼭지 부분이 왕관을 닮았다고 해서 석류가 영광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솔로몬성전 제사장의 지팡이에 석류가 장식되어 있고, 성전 앞 두 기둥머리에 각각 석류 이백 개를 만들어 두 줄로 매어 장식을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또한 그들의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석류와 금방울이 달린 옷을 입어 방울소리가 울려 죽지 않으리라고 한 것을 보아도 그들은 석류를 성스러운 나무로 생각했다. 이후 대제사장 옷자락에는 청색, 자색, 홍색실로 수놓은 석류와 금방울이 번갈아 달려있었다고 하는데, 이렇듯 대제사장의 옷에 달려 있는 식물은 석류뿐으로, 최고의 영광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은 석류를 먹는 것 이외에도 다방면으로 활용했다. 석류가 다 익은 후 내버려 두면 껍질이 점차 시꺼멓게 변하는데, 유대인들은 이것을 태워 토라를 기록하는 잉크재료로 사용했다. 그리고 석류 껍질에는 탄닌이 28%나 들어 있어 가죽을 무두질하는데 사용되었고, 꽃에 들어 있는 푸시닌 색소는 붉은색 염료로 이용되었다.

이런 역사적 인식은 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계속되었다. 기원전 165, 하스모니안 왕조가 헬라(그리스) 왕국을 쫓아내고 정권을 되찾은 뒤 석류를 그린 동전을 발행했다. 땅위에 하나님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였다. 유대교 신비주의 종파인 카발라에 따르면, 석류 꼭지의 왕관 문양 6개의 별을 따서 유대교 상징인 다윗의 별이 도안되었다고 한다. 이 도형은 신성한 보호, 방패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 국기에 다윗의 별이 들어가 있다.

석류는 원래 이란이 원산지로 중동 지역에서 자생하던 식물인데, 아랍인들이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면서 이를 옮겨 심었다. 이슬람의 최후의 거점이었던 스페인 남부 도시를 그라나다(Granada)로 부르는 것은 그 지역에서 석류(granate, pomegranate)가 많이 재배되어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 수류탄(hand grenade) 역시 석류에서 기원했다. 수류탄의 모양이 석류와 비슷하게 생기고 그 안의 수많은 파편은 수백 개의 씨앗을 품은 석류와 닮았으며, 손으로 던지는 유탄이라 하여 수류탄(手榴彈)으로 이름 붙여졌다.

한편 석류는 열매가 많아 다산의 복을 의미했다.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이 초막절을 지킬 때 초막 안에 석류를 집어넣는데 이러한 풍습 역시 다산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석류 즙을 마시면 아기를 잘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석류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해 옛날 민화나 혼례복 등에 그 문양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류를 심으면 자손이 흥하고 부귀가 늘 함께 한다고 하여 양지바른 정원에 석류를 즐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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