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오동명의 소설 '불멸의 제국'
[신간] 오동명의 소설 '불멸의 제국'
  • 서귀포방송
  • 승인 2021.01.2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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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현의 sns독후감

중앙일보 사진기자였던 오동명 작가가 쓴 역사소설 ‘불멸의 제국’이 눈길을 끌고 있다.

'불멸의 제국'은 일본의 침략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민영환과 갑오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탄압을 주도했던 그를 제거하기 위해 하인이자 인력거꾼으로 접근한 동오와의 사이에서 주종 관계를 넘어 서서히 쌓여가는 두 사람의 깊은 신뢰와 내적 갈등을 다룬 역사소설이다.

다음은 정운현의 페이스북에 올린 불멸의제국 후기이다.

근래 틈틈이 신작 소설을 한 편 읽었다.
전 직장에서 사진기자로 근무했던 오동명 작가의 작품이다. 조금은 특별한 존재인 그는 신문사를 그만둔 후 사진과 여행 관련 책을 여럿 냈는데 소설은 처음이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명색이 역사학도인 나는 혀를 내둘렀다. 치밀한 구성, 정확한 사료 고증, 게다가 딱부러지는 역사인식 자세에서 나의 어줍잖은 상상은 보기좋게 고꾸라지고 말았다.

이 소설은 구한말 나라가 풍전등화 같던 때 명성황후 민씨 집안의 재사인 충정공 민영환이 주인공이다. 고종의 총애를 받아 일찍 출사하여 고관대작, 심지어 당시로선 흔치 않았던 해외여행까지 경험한 행운아이기도 했다. 그러나 열강의 각축 속에서 결국 이토 히로부미로 상징되는 일본세력에게 국권이 난자당하자 마침내 순국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연도, 일자, 장소 등 무미건조한 팩트를 골간으로 하되 그 사이사이에 저자만의 역사적 상상력이 맛깔스런 양념처럼 잘 배어 있다. 역사책을 대신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억지스럽게 만든 극적인 장면도 없고, 영웅적 묘사도 없다. 그런데도 소설책을 밑줄 치며 읽었다. 당시의 양심적인 지식인이라 할만한 민영환의 시대적 고뇌를 적절한 심리묘사로 그려낸 것이 돋보인다. 대표적인 기득권자였던 그는 대세를 따르지 않고 대세를 거슬렀다. 그랬기에 고민이 깊었던 것이다. 그 대미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905년 11월 30일, 인시 새벽 4시 15분.

  때가 왔다.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이때 주저한다면 이 또한 죄가 된다. 주저는 저울질이다. 양심을 양분하여 하나여야 할 양심을 둘로 쪼개는 비양심이다. 비양심은 언제나 편한 쪽으로 흐르게 돼 있다. 안일하고 안이하라고 부추기는 악의 손길이 가깝다. 때를 늦추면 늦출수록 악의 손길은 더 가깝다. 적당히 타협하라 한다.
  때가 됐다. 죽음으로 백성에 사죄해야만 죽음 뒤를 기약할 수 있다. 나의 명예가 아니다. 절절한 나의 반성이다. 절박한 나의 통한이다. 백성의 자존심에 희망을 건다. 미래다 그것이.
  다시 문을 연다. 동오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를 일깨운 백성이 보이질 않는다. 그에게 나란 누구인가를 묻게 하고 알게 한 백성이 떠나고 없다. 혼자 가라 한다. 스스로 해내라고 한다. 철저히 혼자가 되라 한다. 죽음 앞에서 솔직해지자. 영환은 칼을 든다.
  이 칼로 제 가슴에 새기고 싶다. 가슴을 뒤지니 명함이 잡힌다. 유럽과 미국을 돌면서 수없이 뿌렸던 명함이다...
  ... 칼을 들어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입에 수건을 문다. 살려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모를 일이다. 그렇게 해서 부지한 목숨은 더 얼마나 너저분해질까. 처음 가는 길이며 마지막 가는 길,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길이다. 칼을 든 손을 높이 들어 목을 향해.
  1905년 11월 30일 묘시, 새벽 6시, 회나무골.

오동명 지음 소설 '불멸의 제국'
오동명 지음 소설 '불멸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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