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벌초 풍습을 바꾼 코로나19 '올해는 오지마세요'
제주 벌초 풍습을 바꾼 코로나19 '올해는 오지마세요'
  • 고기봉 기자
  • 승인 2020.09.13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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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벌초 고향에 있는 우리끼리 할께요..

코로나19가 제주의 전통적인 벌초 풍습을 바꿔놓고 있다. 한여름 긴 장마와 태풍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추석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추석 연휴 기간 동안 가족·친척·친구 등을 만날 생각에 다들 들떠있지만, 추석 전에 끝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바로 벌초다.

대개 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루(917) 이전에 끝내기 때문에 이번 주말이 벌초 절정기이라 할 수 있다.

벌초는 조상의 묘에 난 잡초를 베어 정리하는 전국적인 풍속이다. 시기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제주지역은 보통 음력 8월 초하루 전후부터 추석 전까지 끝내는 것이 상례다. 추석 당일 고향을 찾지 않는 것보다 벌초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더 큰 불효로 여길 만큼 제주의 벌초문화는 타 지역에 비해 독특하다.

제주지역에서는 '식게 안헌 건 놈이 모르곡 소분 안헌 건 놈이 안다(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하지 않은 것은 남이 안다)', '추석 전이 소분 안 허민 자왈 썽 맹질 먹으레 온다(추석 전에 벌초 안 하면 덤불 쓰고 명절 먹으러 온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벌초를 중요시해 왔다.

특히 예로부터 추석 당일 성묘를 지내는 풍습이 없는 제주에서는 음력 81일쯤 문중 친족들이 한데 모여 조상의 묘를 찾아다니며 벌초를 하는 모둠벌초는 매우 중요한 행사로 여겨진다. 직계 친척 이외에도 문중에 속한 친족들이 광범위하게 참석해 정을 나누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자리가 됐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고향을 찾을 정도로 제주의 벌초문화는 유별나다. 추석에 여러 사정으로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용납되지만, 벌초에 빠진다면 친척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모둠벌초는 2000년대 초반까지 주로 음력 8월 초하루에 이뤄졌지만, 직장 업무와 타 도시에 살고 있는 친척 등을 위해 8월 초하루 전후 주말에 행해지고 있다.

제주 속담처럼 추석 때까지 벌초를 안 한 묘소가 있으면 자손들이 손가락질을 받았다. 벌초하지 않고 방치된 묘를 골총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손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음력 8월 초하루를 전후해 제주의 중산간 및 들녘 인근 도로는 벌초하러 온 차들로 붐비고 산속 곳곳에서는 예초기 소리가 들리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시기에는 벌초 했수과(했습니까)?”라는 말이 안부 인사로 통할 정도이다.

모둠벌초를 위해 제주지역은 2000년대 초반까지 학생들을 위한 '벌초방학을 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벌초를 하는 날 효행사상을 고취한다는 의미에서 방학을 실시했으나, 자녀 수 감소 등의 영향으로 서서히 줄더니 이제는 사실상 추억 속으로 사라져 그리운 방학으로만 남게 됐다.

제주의 모둠벌초는 일가 친척이 한데 모여 조상을 기리고 정을 나누면서 공동체를 끈끈하게 만드는 의미있는 풍속이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 변화에 따라 벌초의 의미와 풍습에 대한 세대 간 인식차가 점점 달라지고 있지만,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본다는 근본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벌초하러 모인 가족·친척들과 얘기를 나누며 조상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벌초의 의미일 것이다.

핵가족화와 다른 지방에 나가 사는 이들이 많은 일부 가정은 묘소 관리의 어려움으로 대행업체에 벌초를 맡기는 등 유별난 제주의 벌초문화에도 차츰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기도 하다.

제주도내 전역에서 벌초행렬이 이어지면서 벌초와 관련한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안전사고의 대부분은 날카로운 예초기 날에 상처를 입거나 벌에 쏘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벌초시 향수, 스프레이, 화장 등으로 강한 냄새를 유발하거나 밝은 색상의 옷을 입으면 벌이 달려들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벌떼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벌떼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20m정도 떨어진 곳으로 도망쳐 자세를 최대한 낮춰야 한다. 벌떼를 쫓기 위해 옷이나 수건 등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르는 행위도 오히려 벌떼를 자극할 수 있다.

예초기는 날이 날카롭고 회전속도가 빨라 신체부위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인 상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벌초하기 전에 사용할 예초기는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벌초시 예초기가 돌에 부딪치면 날이 깨져 사용자에게 날아올 수 있으므로 작업 전에 주변 환경을 반드시 살피고, 또 작업 반경을 확보해 반경 내에는 다른 사람이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

예초기는 사용 전 칼날의 볼트 등 잠금 상태를 반드시 확인하고 안전모와 무릎보호대 등 개인보호 장비를 착용해 안전수칙을 잘 지켜 모두가 건강하고 풍요로운 한가위가 되길 기원해본다.

​제주지역의 벌초는 직계가족들이 모여 고조부의 묘소까지 벌초하는 '가족벌초'와 '괸당(친척의 제주어)'이 모두 모여 기제사를 마친 선대 묘 수십 기를 돌보는 '모둠벌초(문중벌초)'가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영곡공파 고수용 종손집 일가들이 시흥리 가족 공동 묘지에서 모둠 벌초를 하고 있다.
​제주지역의 벌초는 직계가족들이 모여 고조부의 묘소까지 벌초하는 '가족벌초'와 '괸당(친척의 제주어)'이 모두 모여 기제사를 마친 선대 묘 수십 기를 돌보는 '모둠벌초(문중벌초)'가 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영곡공파 고수용 종손집 일가들이 시흥리 가족 공동 묘지에서 모둠 벌초를 하고 있다.
오조리 영곡공파 자손들이 시흥리 가족 공동 묘지에서 모둠벌초를 마무리하고 차례를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있다.
오조리 영곡공파 자손들이 시흥리 가족 공동 묘지에서 모둠벌초를 마무리하고 차례를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있다.
코로나 19가 제주의 벌초 풍습을 바꿔놓고 있다. 작년에는 60여명의 참석하여 모둠벌초을 했지만, 올해는 30여명의 벌초를 하는데 마스크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며 벌초를 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제주의 벌초 풍습을 바꿔놓고 있다. 작년에는 60여명의 참석하여 모둠벌초을 했지만, 올해는 30여명의 벌초를 하는데 마스크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며 벌초를 하고 있다.
육지에서 벌초하러 오지 않아 어린 조카들까지 모둠 벌초에 참여하고 있다.
육지에서 벌초하러 오지 않아 어린 조카들까지 모둠 벌초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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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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