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개토론회를 앞두고: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공적 판단의 원리와 그 토론의 조건들
[기고]공개토론회를 앞두고: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공적 판단의 원리와 그 토론의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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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6.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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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교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장훈교
장훈교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와 국토부 간에 3회에 걸친 사전토론회가 끝났다. 드디어 오는 7월 2일부터 시민과 함께 하는 공개토론회를 시작 한다. 제2공항 공식 발표가 이루어진 2015년 11월 이후로만 보아도 55개월 만이다. 수많은 시민의 노력과 헌신, 희생으로 지금 여기까지 왔다.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를 외치며 산화한 양용찬 열사의 영혼과 2012년 분노로 흐느끼던 구럼비가 우리와 함께 있다. ‘모든’ 제주와 함께 지금 여기에 왔다.

55개월, 한 달을 30일로만 잡아도 1650일이다. 그동안 제주 시민은 국토부와 환경부가 발간한 관련 보고서, 용역 연구진이 제시한 데이터, 제주 연구기관의 보고서와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 보고서가 참조했다고 주장한 외국 문헌들과 데이터를 읽고 또 읽었다. 항공 관련 서적은 눈에 띄는 데로 모았다. 공개청구로 구할 수 있는 자료도 있었지만 정말 필요한 자료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도움이 되는 자료가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전문가들이 참조한다는 외국 항공 산업 자문 업체의 기술 동향 보고서를 읽기 위해 관련 용어를 익혔다. '사전타당성보고서'와 '예비타당성보고서', '전략환경영향평가보고서'에 제시된 수치들을 이해하고자 제시된 수식을 해석해, 자료를 하나하나 직접 입력도 했다. 외국 공항을 조사하고 관련 자료를 모았다. 전문가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리 없었다. 대신 손과 발을 이용했다. 동굴을 갔다. 숨골을 찾았다. 철새를 만났다. 아무리 봐도 소음 영향 분석은 거짓말인 것 같았다. 보고서에 인쇄된 작은 소음 영향 지도 한 장을 들고 조사를 했다. 기상청 자료도 필요했다. 데이터를 받았다. 데이터 해독하는 법을 배우는 데는 며칠 아니 몇 달이 필요했다.

제2공항 타당성 재검토위원회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원희룡 도지사와도 그렇게 만났다. 도민과 함께 하는 이번 공개토론회도 그 1650일이 열어낸 것이다. 만나는 이들은 달랐지만, 반응은 같았다. 전문가, 도지사, 국토부는 시민과 대등한 상황에서 토론하는 걸 언제나 “전례 없는 과정”이라고 했다. 놀랍게 듣는 말도 똑같았다. 그들은 시민이 제시한 대안 곧 “하나의 공항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이 ‘오해’와 ‘오류’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근거 없는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며 훈계했다. 정부와 시민 사이에는 구조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려는 게 아니다. 제주 시민은 그 구조적인 불평등을 하루하루 넘어서며 1650일을 달려 지금 여기에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가 보인 태도다. 오해와 오류, 근거의 부족은 시민의 질문과 대안을 비판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시민에게 관련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자료 검증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해야 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다. 삶의 근본적 전환을 감당해야 할 사안과 직면해 시민이, 정부 프로젝트를 이해할 때 나타나는 오해와 오류, 근거의 부족은, 정부와 시민의 구조적 불평등으로 언제나 발생하는 보편적 상황이다. 이를 이유로 시민의 질문을 비판한다면, 시민은 정부에 어떤 질문도 할 수 없다.

이런 태도가 발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갈등 당사자 간의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부여된 ‘토론자’라는 형식적 동등성이 이 구조적 불평등을 감추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신의 안을 설명하고 그 안의 불가피성을 시민에게 입증하는 건 민주적 책임성의 기초다. 그런데 시민이 동등한 토론자로 호명되는 순간 정부 안의 문제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시민에게 전가된다. 상황이 역전된다. 정부가 시민의 입증 과정에 오해와 오류가 있다고 비판한다. 전문가를 대동하고 나타나 근거가 부족하다며 훈계한다. 시민의 역할은 ‘입증’이 아니다. 오히려 나와 동료시민의 안전과 자유를 위해 정부의 안이 입증될 때까지 그 안을 거부하는 데 역할이 있다. 압도적인 자원과 조직을 갖추고 있는 정부는 시민의 삶에 중대한 상황변화를 일으키는 문제에 관한 한 그 불가피성이 입증될 때까지 시민에게 반복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만약 거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설명은 멈출 것이다. 오해와 오류, 근거의 부족은 우리에게 시민의 자격이 없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그건 정부의 입증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의미한다. 거부는 구조적 불평등 아래에서 시민이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다.

시민의 거부권은 국토부의 관대함이 보장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곧 우리의 ‘공화국’이 보장하는 것이다. 공화국 내에서 모든 시민은 동등하다. 다른 시민으로부터 지배받을 수 없다. 그 목적이 전체 다수 동료시민의 필요 충족을 위한 공공의 실현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민은 진정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가피성이 입증되기 전까지는, 다른 시민의 자유를 위해 나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공화국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에게 하나의 괴물로 나타나지 않기 위한 원리다. 시민은 시민 위에 군림할 수 없다. 하나의 특수한 시민직인 공직은 더욱 그렇다. 우리는 동등한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유를 위해 거부해온 것이다.

“하나의 공항으로 충분하다.” 제주 시민은 지난 55개월, 1650일 동안 정부의 안을 견제하며, 그와 경쟁할 수 있는 자신의 대안을 만들어왔다. 국토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다양한 안을 사전 검토했고, 그 결과 성산에 제2공항을 추진하는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건 공적 결정이 아니었다. 용역연구진이 기술합리성과 국가예산의 최적 배치라는 조건 아래 결정한 하나의 ‘안’에 불과하다. 또한, 그 기술 과학적 결정 자체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제주 시민이 이해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적 결정의 권한을 동료시민에게 보장하려면, 실질적으로 경쟁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토부는 합리적 최종안을 제출한다면서 경쟁하는 대안이 존재할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해버렸다. 제주 시민은 그들이 봉쇄한 대안 가운데 제주의 미래에 더욱 부합하는 다른 경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질문을 하고 있다. 하나의 공항은 정말 불가능한가? 제주 시민은 그 질문을 포함해 검토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배제됐다. 1650일 동안 제주 시민은 그 가능성을 직접 찾기 위해 국토부와는 다른 판단 원리로 공항을 연구하고, 항공 산업의 기술발전 동향을 분석하며, 제주 산업구조의 현재를 조사했다.

하지만 정부는 현재의 성산 제2공항 안만이 유일한 안이라고 반복해서 주장한다. 제주 시민에게 남은 건 동의의 유무뿐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동의는 시민에게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국토부와 시민 사이의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에도, 공개토론회가 예정되어 있음에도, 제2공항 추진 절차가 계속 진행되는 이유는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안의 불가피성은 입증되지 않았고, “하나의 공항으로 충분하다”는 제주의 대안은 점점 더 많은 동료시민의 주장이 되고 있다. 이는 제주 시민들이 국토부와는 다른 원리로 제2공항 문제를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걸 보여준다. 국토부가 볼 수 없던 그래서 도입할 수 없던 새로운 공적 판단의 원리를 찾은 것이다.

정부는 현 공항의 기술적 물리적 개선만으로 제주의 항공 미래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불가피성의 핵심 근거다. 이 불가피성은 두 개의 계산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는 환경용량이다. 제주 시민들은 제2공항이 제주의 환경용량을 넘어설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환경용량을 계산할 수 있는 합리적 도구가 없어, 반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미래의 항공수요다. 항공수요 예측이 불확실하다는 비판에 대해 국토부는 예측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대체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두 방법 모두 정부의 현 제도 안에선 중대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보완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불확실한 변수를 배제하거나 그 한계를 알면서도 기존의 방법을 그대로 이용하는 건 과학적 미래 예측이라기 보단, 특정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다.

환경용량과 미래 항공수요의 불확실성에도 현재와 같은 결정을 내리려면, 두 변수를 배제해도 제주가 ‘안전’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결정으로 위험의 파급효과가 높고, 한 번 사업이 이루어지면 다시 복구하기 힘든 비가역적 파괴 현상일 경우에는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 적용될 수 있다. 과학적 증거가 부족할 때, 이를 ‘안전’ 상태로 해석하기보다는 위험 상태로 전제하고 대응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라는 원리다. 제2공항으로 제주가 안전하다고 판단할 합리적 근거가 없다면, 지속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에 정책 판단을 종속시킬 수도 있다. 국토부와는 다른 판단이다. 제주 시민은 제2공항에 관한 공적 결정 과정에서 정치적 판단을 제거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다. 다른 공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제주는 이미 사전예방원칙을 제주 관리의 기본 합리성으로 조문화하고 있다. 다양한 조례에 반영된 ‘선보전 후개발’ 원리가 바로 그 증거다. 선보전 후개발 원리는 보전과 개발이 경합할 때, 보전에 우선적인 가치를 부여할 것을 요구한다. 개발은 그 불가피성이 입증될 때만 한정하여 승인해야 한다. 또한, 불가피성만 입증되어선 안 된다. 개발은 미래 제주에서 발생할 개발 총량을 최소화할 때만 허용되어야 한다. 만약 해당 개발로 전체 개발의 총량이 증가한다면 결국 보전 원리는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이를 ‘개발 총량 최소화의 원리’라고 한다. 따라서 사전예방원칙에 입각할 때 제2공항은 그 개발의 불가피성을 입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개발 총량 최소화의 원리를 따른다는 점도 입증해야만 한다. 제2공항에 제주 시민이 반대하는 이유는 그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주 개발 총량 극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민주적 책임성에 따른 입증의 책임, 거부권의 보장, 사전예방원칙의 적용, 불가피성의 입증 및 그에 따른 개발 총량 최소화의 요구는 제주 시민이 제2공항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며 “하나의 공항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기본 근거다. 이 새로운 공적 판단의 원리가 국토부가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의도적으로 봉쇄하고자 했던 제주의 또 다른 미래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 원리를 정부 보고서를 통해 배운 것들이 아니다. 도의원들이 제공한 것도 아니다. 이 원리와 주장들은 동료시민과 함께 제주의 미래를 결정할 때, 우리가 어떤 공적 판단의 원리에 기초할 것인가를 고민해온 우리의 동료시민이 발전시킨 것이다. 비자림로에 오두막을 짓고 그 현장을 기록했던 시민들과 오늘도 밤을 새워가며 정부 보고서의 빈틈과 해명되지 않는 기술적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민들, 도청 앞 천막촌에서 단식으로 때론 마이크로 항의해온 시민들이 발전시킨 것이다.

그 시민들의 노력과 헌신, 열정이 공개토론회를 만들었다. 1650일의 그 긴 시간이 제주의 미래를 제주 시민이 토론하고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론장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동료시민의 헌신과 노력에 응답하여 국토부의 판단 원리와 시민의 판단 원리를 비교하고 제주의 미래를 위한 공적 판단의 근거를 함께 발견하고 결정하는 것이다. 시민적 우정으로 응답할 순간이다. 동시에 이 공개토론회의 결과를 뒷받침할 공적 제도화에 관한 대응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이번 공개토론으로도 해명되지 않은 시민의 합리적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정부의 추가적인 설명과 그 설명을 시민이 검증하기 위한 제도 절차와 장치가 제공되어야 한다. 정부는 시민에게 동의를 요구하지 말고, 견제의 능력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제주 시민뿐만 아니라 모든 동료시민에게 실질적인 대안 선택의 장이 열릴 수 있다.

이와 함께 제주 시민의 견제를 제도화할 수 있는 근본적 변화도 요구해야 한다. 정부의 용역연구보고서가 정부의 공공정책 결정을 지배하는 현재 조건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전문기술집단의 판단이 민주주의를 대체하고, 사실상 필요 정책의 범위와 그 모델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이 경우 시민에게 남는 건 권리로 보장되지도 않는 동의뿐이다. 이는 격렬한 찬성과 반대의 갈등을 동반한다. 시민사회는 반대를 넘어 대안을 제시해야 할 압박을 받는다. 반대만 주장한다면 결국 주변화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엔 그 대안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다. 또한, 이는 사후적으로 제시되는 대안이다. 매몰비용이 발생하면 대안은 경제 논리로 폐기된다. 무엇보다 이 오랜 과정에 몰입할 수 있는 시민이 많지 않다. 소수 시민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이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방법이 가능하다. 정부와 의회가 시민사회에 자신의 대안을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제공한다. 시민사회의 보고서가 전문기술집단의 보고서와 함께 의무적으로 동시에 언제나 병행적으로 공적 판단의 장에서 다루어지도록 보장한다. 그래야만 사전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대안적이고 사전적인 공적 토론이 가능해지려면, 시민이 정부와 의회의 공적 지원 아래 시민이 공동 관리하는 시민의 연구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이 연구기관은 단기간의 정책검증이나 비판 차원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주의 미래에 대한 시민의 제안을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갈등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제2공항을 둘러싼 현재의 갈등을 제주의 미래를 위한 실질적 경합이 이루어지는 토론의 장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민주적 제도가 필요하다. 토론을 원한다면, 그 조건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 제주의 시민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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